반딧 말라이아리손 / 태국 한국전참전용사협회 회장

문재인 대통령이 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매주 수요일 태국 한국전 참전용사협회는 노병들이 모여 한국전쟁을 회고합니다. 대부분 90세 넘는 고령이라 참석하는 인원이 매주 줄어들어 안타깝지만 이야기 내용은 한결같습니다. 철없던 스무 살 무렵 지겹도록 배를 타고 거의 지칠 때쯤 도착한 곳, 아는 것이라고는 일본과 가까운 곳에 있고 지금은 전쟁 중인 작은 나라라는 것, 소총 잡는 법만 겨우 익히고 투입된 전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총탄도 포탄도 아닌 눈보라와 매서운 추위였다는 것, 태국군 1개 대대가 중공군 연대 규모 공격을 육박전까지 벌이며 격퇴해 `Little Tiger`라는 애칭을 갖게 한 포크촙전투의 영웅담, 막사에서 함께 생활한 전쟁 고아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까오리."

건네준 과자 하나에도 수줍게 웃어주던 작은 소년과 달콤한 향기가 나는 맛있는 사과 그리고 무섭도록 춥고 힘들었던 비무장지대. 내가 아는 까오리의 전부입니다만 우리 손녀들에게 까오리는 언젠가 꼭 가고 싶은 꿈의 나라입니다. 매일 손에서 놓지 않는 휴대폰에서는 신나는 K팝 음악이 나오고 TV에선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방영해 줍니다. 재작년 방문했던 한국 모습에 나는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전쟁의 상흔은 보이지 않았고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는 국민이 살아가는 풍요로운 나라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겨울 추위는 매서웠지만 달콤한 과즙을 품은 붉은 사과는 아직도 맛있기만 하였습니다. 젊은 시절 잠시 머물렀던 나라는 이제 나와 내 가족의 자랑이자 긍지입니다. 난 한국전 참전용사니까요.

1950년 10월 22일 첫 출정한 이래 태국은 육·해·공군 6326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고 그중 실종자 5명을 포함해 129명이 전사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태국 왕실 후원하에 설립된 태국 한국전 참전용사협회는 10월 22일을 한국전 참전기념일로 지정해 매년 참전용사와 후손들 주관으로 기념 행사를 하고 있고, 몸이 불편하거나 사망한 참전용사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1970년부터는 경제 사정이 어려운 참전용사 유가족과 후손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태국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현재 주태국 한국대사관과 국가보훈처 등 대한민국 정부기관과 한국 기업체에서 한국전 참전용사와 후손들에게 지원해 주는 다양한 보훈 혜택은 우리 협회에 큰 힘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뿌듯한 긍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재방한 사업(Revisit Korea)`으로 참전용사와 후손 758명이 방한하였습니다. 특히 매년 참전용사 후손 400여 명에게 지급되는 장학금과 연 2명 내외 한국 파견 장학생 선발 프로그램은 할아버지 세대가 맺어준 한·태 인연을 미래 세대로까지 이어주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이 지난 인연을 잊지 않고 태국 참전용사들과 후손들에게 보여준 배려와 지원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친구가 진정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전용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태국 산골짜기까지 찾아가 `평화의 사도 메달`과 위로금을 안겨주며 고마움을 전하는 한국 정부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K팝과 BTS를 좋아하는 손자 손녀들에게 한국전 참전용사인 할아버지는 큰 자랑거리가 되었고 거실 한가운데에 걸린 평화의 사도 메달은 참전용사 가족들에게 둘도 없는 큰 선물입니다.

우리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이제 한국은 또 다른 고향입니다. 난 내 고향 한국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장해 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손자 손녀들에게도 영원한 또 하나의 고향이 되길 소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