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쳐들어오면 / 고려인들 일본에 붙는다고 했대 / 우리를 왜놈 간첩이라 했대 / 골치 아픈 믿을 수 없는 / 고려인에겐 추방이 상책이라 했대"('고려인' 중)

조선인들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러시아 연해주로 이민을 떠났다. 농업 이민은 물론 독립운동가들의 망명도 이뤄졌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 정권은 17만여명이나 되는 이들을 강제로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내팽개쳤다.

시집 '강제이주열차'는 이런 '고려인'들의 가슴 아픈 강제이주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시집은 강제이주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2만명가량의 고려인들을 위한 진혼곡이기도 하다.

고려인들은 황무지에 버려진 뒤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곳을 개척하고 한인집단농장을 경영하면서 중앙아시아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시인은 이런 고려인들의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시구로 적어냈다. 그가 직접 강제이주를 경험한 건 아니지만, 시를 읽다보면 당시 고려인들의 아픔을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시집은 3부로 구성됐고 1부에선 강제이주사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삶의 터전이었던 연해주에서 하루아침에 수만 킬로미터가 떨어진 허허벌판으로 내몰려야 했던 사람들의 사연과 감정이 그려진다.

"한번 끌려온 / 징용도 치가 떨리는데 / 그걸 무려 / 두차례나 당하고 말았으니 / 일제는 취직이라 속이고 / 조선 농민들 끌고 가 / 사할린 탄광에서 강제노동 시켰지 (중략) 우리 십오만 사할린 징용자들을 / 일본으로 끌고 가서 / 여러 광산 탄갱으로 들여보냈어 / 지옥 같은 노역장 / 못 견디고 탈출하면 / 사냥개 풀어서 잡아다 총살시켰지 / 들판에 그냥 버렸어"('이중징용' 중)

2부에선 러시아와 일본 간 분쟁의 장이자 일제 강제징용자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사할린의 한인들을 다루고, 3부에선 시인이 2018년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경험을 기반으로 쓴 작품들이 수록됐다.

특히 시집에는 홍범도 장군이 대한독립군을 창건하면서 공포했던 '유고문' 형식을 빌린 '신 유고문'이 실렸다. 시에는 오늘날 한반도 위기 현실과 우리의 정신을 바로잡기 위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시인은 작가의 말을 통해 "1937년 그 아비규환의 강제이주열차를 타고 고려인들과 더불어 장장 42일 동안 2만 킬로미터의 먼 길을 시름없이 달려가는 회상의 동일성(identity)을 체감했다"며 "작품들은 우리 민족이 연해주와 사할린, 중앙아시아에서 겪었던 모든 고통과 시련, 그리고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만 두고 차마 꺼내지 못했던 애환을 내가 시인으로서 대신 불러내고 모셔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순 지음 / 창비 /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