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평오 / KOTRA 사장

KOTRA 사장으로서 우리 경제인들이나 외국의 비즈니스맨들을 만날 때 문재인 정부 신남방 정책의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해서 질문을 받곤 한다. 그때마다 신남방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논리가 있다.

먼저 무역학에서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일수록 상호 교역규모가 크다는 중력모형이론(Gravity Model)이다. 유럽연합(EU)이나 북미지역은 역내 교역 비중이 60%를 초과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중국, 일본, 신남방 국가들과의 교역 비중은 2018년 기준 약 47%에 불과하다. 그만큼 확대 여지가 큰 것이다. 또한 아세안과 인도로 대표되는 신남방 국가들이 수년간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며 `포스트 차이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3.2% 수준인 데 비해 인도는 7%, 아세안 주요 5개국(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은 5%에 달한다. 이들 지역은 중국의 뒤를 이을 세계의 공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지금, 신남방 국가들은 우리에게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2017년 11월 신남방 정책을 선언하면서 적극적으로 정상외교와 교역 활성화를 추진해온 것은 이러한 점에 기인한다. 우리와 신남방 국가 간 상호 교역액은 2015년 이후 연평균 약 12%씩 성장해 작년에 1800억달러를 돌파했다. 28일 출범 1주년을 맞는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는 그동안 한·신남방 국가 상호 교류와 이해 증진의 기반을 다져왔다. 오는 11월에는 모든 아세안 정상이 방한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부산에서 개최된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신남방 정책의 기본 철학과 나아갈 방향을 재점검하고 새로운 발전의 모멘텀을 마련해야 할 때다.

신남방 정책이 과거의 경제외교 정책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바로 3P(People, Peace, Prosperity)에 기반을 둔 상생번영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일방적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고려한 경제협력 모델은 상대방 국가의 저항감이 강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신남방 국가들은 과거 우리나라가 고도성장기에 이룩했던 산업·경제 발전의 노하우를 통해 자국의 경제를 육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 그러한 니즈를 채워주면서 시장 전체의 파이를 확대하려는 현명한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문재인정부가 신남방 정책을 추진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현시점에서 이제는 상생번영에 중점을 둔 지속가능한 경제협력 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인도와 아세안 10개국은 경제 발전 수준과 산업 협력의 니즈가 다르기 때문에 국가별 발전 수준에 맞춰 차별화된 경제협력 모델이 있어야만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국가별로 협력 가능한 타깃 산업을 면밀히 선정하고 우리의 강점과 연계한 전략적인 산업협력을 통해 산업화의 긴 여정을 함께해 나가야 한다. 베트남 전기전자산업에 우리 기업이 진출해 국가 간 산업 밸류체인을 구축함으로써 가전과 휴대폰을 베트남의 주력 산업으로 키워가고 있는 모델은 지속가능한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경제협력이 지속될수록 우리는 신남방 지역과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여력도 갖출 수 있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몰고 올 수는 없다. 신남방 정책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한국과 신남방이 함께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로 나아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협력은 무엇보다도 산업 발전의 씨앗을 뿌리고 결실을 함께 거두는 긴 과정 속에서 가능하다. KOTRA도 해외무역관을 통해 지속가능한 협력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그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신남방과 상생 번영의 길을 함께 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