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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숙한 민주주의가 극일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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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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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 / 미국 워싱턴대 잭슨국제대학원 석좌교수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난 직후 미국의 한 방송이 현지의 한 가족을 인터뷰했다. 기자가 가장에게 원전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물었다. 짧은 시간이 흐른 후 그 가장은 모든 사람의 책임이라고 하였다. 이 장면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만약 같은 상황이 한국이나 중국에서 벌어졌을 때 이 같은 대답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침착하고 정제된 답변은 나에게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이에 대한 일말의 해답은 국가와 사회(개인), 위정자와 일반대중 간의 관계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일본의 산업화와 근대화는 기본적으로 서구에 대한 위협에 사회 전체가 대응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서구의 제도와 문화 수용은 일본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일본 정체성을 고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일본식으로 산업화·근대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너무 일본적이라 다른 나라들의 모방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국주의 시대에 이루어진 일본의 근대화는 제국주의적 방식을 통해 국제적인 인정을 요구했고 그 결과는 패전으로 귀결되었다.

일본의 민주화는 바로 이 패전의 선물이었다. 일본 민주주의는 사회가 쟁취한 것이 아니고 미국의 한 학자가 말했듯이 미국의 온실 속에서 태어났다. 미 군정은 탈군사화 이외에는 근본적으로 일본 사회를 바꾸어 놓지 못했다. 패전은 일본 엘리트들의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을 가져오지 못했다. 원폭이 남긴 깊은 상처는 정치적으로 일본 엘리트들이 일본 국민과 오히려 끈끈한 유대감을 이어가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쟁취되지 않은 민주주의 속에서 일본 국민의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어렵게 했다.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국가중심적 사상이 남아 있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일당의 정치 독점이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왔다. 일본 사회의 갈등적 요소들은 관료체제 안에서 대부분 걸러져 일본 사회를 더욱더 탈정치화로 치닫게 했다.

한국 민주주의도 시작은 미국에 의해 주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간 권위주의체제와의 갈등과 투쟁을 통해 쟁취된 것이다. 한국은 아직도 국가와 사회, 개인과 국가 관계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정당은 한국 사회에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한국시민사회는 집단적으로 국가에 저항하지만 정상적인 협력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혼란과 갈등 속에서도 한국 민주주의는 궁극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의 이런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쉽게 변하는 정책과 입장, 허둥대는 듯한 모습, 타협이 없는 것 같은 정쟁 등은 한국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최근 일본 외무부대신이 한국 내 반일집회에 대해 어딘가 어색하다고 한 발언이 그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또한 금번 수출규제에서 나타나듯 일본은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국의 변화 자체를 이해하기보다 일본적 시각에서 한국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일본에 대한 시각은 식민지 경험에 입각하여 일본을 단일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정상국가화가 군국주의로 이해된다. 동시에 일본 위정자와 일본 국민을 분리하지 않게 된다. 일본 국민들도 역사적으로 희생당했다는 인식을 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는 패전 이후 70여년간 미국의 영향하에서 반미는 물론이고 국가에 대한 도전을 하지 못했던 일본 국민 대중의 일반정서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일본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은 한국민주화가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의 영향과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적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한·일 교섭은 처음부터 미래의 문제를 잉태하고 있었다. 외교는 대중의 문제가 아니었고 한·일관계는 냉전의 베일에 가려 위선적이고 부패한 관계였다. 위정자와 엘리트들에게 지배되었던 한·일관계는 미국의 영향하에 표면적으로는 정상성을 유지했을 뿐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엘리트 수준의 한·일관계가 대중 수준으로의 이전을 의미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한과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피맺힌 사연들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이슈가 될 수 없었다. 이러한 한국의 국내 변화는 탈냉전과 함께 한·일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극일 비전은 경제에 그쳐서는 안된다. 일본보다 동적이고 활발한 민주주의 정치를 정착시키는 것이 그 상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더욱 보편적이고 다른 국가들의 공감대를 얻어 귀감이 되는 민주정치야말로 일본을 이기는 길이다. 나아가 경제적 극일은 진정한 민주적 제도의 정착 없이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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