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수 / 한양대 석좌교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애초의 이름이 그게 아니었다. 그가 1946년에 아칸소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던 때에는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드 3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의 아버지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이른바 `순회 세일즈맨`이었는데, 클린턴이 태어나기 3개월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러니까 클린턴은 유복자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세 번째 부인과 이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클린턴의 어머니와 결혼을 하여서는 클린턴을 낳기에 이른 것이었다. 클린턴의 태생 또는 집안은 우리의 통념으로 보면 "더 이상 나쁘기 어렵다"고까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클린턴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은 직후에 뉴올리언스로 가서 간호학교를 다녔다. 클린턴의 양육은 친정 부모에게 맡겨졌다. 클린턴의 외조부모는 인구가 1만에 훨씬 못 미치는 앞서 말한 조그만 마을 호프에서 조그만 식료품 및 잡화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아칸소주를 포함하여 미국의 남부 지역은 백인과 비백인을 엄격하게 구별하여 인종 차별을 하는 것이 일반이었는데, 그 식료품점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외상 거래를 트는 것으로 적어도 백인들 사이에서는 악평이 나 있었다.

클린턴의 어머니는 1950년에 간호학교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위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같은 해 아칸소주의 다른 도시 핫스프링스에서 자동차 딜러 사업을 하는 로저 클린턴과 결혼하고 아들과 함께 위 도시로 옮겨갔다. 클린턴이 그 아버지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물려받아 클린턴의 성을 가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나 그가 15세가 되면서였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후인 1995년에 나온 유명 언론인에 의한 그의 전기(데이비드 매러니스, `그의 반에서 1등 : 빌 클린턴 전기`)에 따르면, 클린턴의 계부는 상습 도박꾼에다 알코올 중독자로서, 걸핏하면 그의 어머니에게, 또 나이 어린 동생 로저 클린턴 2세에게 주먹을 휘두르곤 했다. 그럴 때면 클린턴은 계부와 으르렁대면서 싸웠고, 그를 때려 주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란 사람이 고등학교를 마친 후에 조지타운대학에 입학하여 외교학을 전공하고, 그 졸업과 함께 영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로드 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과 정치학 등을 수강하였다. 그리고 예일대학의 로스쿨에 들어가 1973년에 졸업하면서 변호사의 자격을 취득하였고, 그 학교에서 알게 된 1학년 위의 힐러리와 1975년에 결혼했다. 그 이후의 경력에 대해서는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민주당 소속의 대통령으로서는 클린턴 다음인 버락 오바마도 `집안이 복잡`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미 쓴 일도 있지만(매일경제신문, 작년 10월 27일자),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케냐 사람으로, 하와이대학에 유학 와 있을 때 같은 학교의 열여덟 살 백인 처녀와 사랑에 빠져 낳은 아들이 바로 오바마이다. 케냐에는 첫째 부인이 시부모와 같이 살고 있었다. 

오바마는 우선 아버지 쪽으로 남자 여섯, 여자 하나 도합 일곱 명의 이복형제가 있다. 한편 어머니는 미국으로 유학 온 인도네시아 사람과 재혼을 했고 그 사이에 여동생이 있다. 그렇게 해서 오바마는 형제가 도합 여덟 명이다.

근자에, 좋은 머리나 아름다운 용모 따위를 그냥 물려받아 누리는 사람은 이 불공평한 세상에 대해서 죄책감을 품어야 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어떤 글을 읽었다(그 필자는 IQ가 높거나 선천적으로 노래를 잘하거나 몸매가 빼어난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걸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도 역시 빈한하고 무지한 집안의 링컨까지 포함해서 위와 같은 미국의 대통령들을 보면서, 성실과 자기 절제, 그리고 노력이라는 덕성이 역시 충분히 강조되어야 하며, 자신이 택한 것도 아닌 좋은 머리나 용모에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먼저 스스로 할 수 있는 바를 다 하였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진정으로 귀하게 하는 자질은 과연 무엇일까, 또는 무엇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