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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團 여건이(呂健二) 단장은 말한다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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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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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한국의 저명한 논객 김동길 박사는 民團中央 단장과 2회에 걸쳐 民團의 당면 과제와 문제 등에 대하여 대담한 바가 있다. 본지는 여건이 단장의 대담을 중심으로 오늘날 民團이 직면한 고뇌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金東吉 :
안녕하십니까? 김동길입니다. 오늘 민단 여건이 단장을 모시고 얘기를 계속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고생하고 계시는지 조총련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말씀을 해주십시오.

呂健二 :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총련은 북한 노동당이 직접 관리하는 단체입니다. 총련 의장, 부의장, 여성동맹 의장, 상공회 회장, 조선대학교 총장 등 5명은 북한 최고인민대회 대의원입니다. 소위 국회의원입니다. 일본에 북한 노동당 일본지부가 있는데 총련 간부들이 모두 속해 있습니다.

우리 民團은 잘 알다시피 순수한 민간단체일 뿐인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총련과 교류하라고 요구하는데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총련은 북한이 직접 관여하는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20여 년 전 일본 지바(千葉)에서 세계탁구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때 남과 북이 모두 참여하기에 공동 응원단을 만들자고 했었습니다. 당시 총련과 협력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총련은 북의 지령을 받고서야 움직이기 때문에 대표들은 만나서 회의를 아무리 해도 답변이 없습니다. 그들은 돌아가서 지령을 받고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년이면 2020년 동경올림픽입니다. 그러나 매스컴에서는 2020년 동경올림픽에서도 선수들 공동 입장, 그리고 공동 응원단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은 북한 즉 총련에 대하여 핵이나 미사일, 그리고 납치문제 등으로 아주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방 직후에도 당시 일본 공산당에는 ‘조선지부’라는 부서가 있었는데 당시 김천해(金天海)를 조선인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김천해는 일본 공산당 내에서 세력을 키웠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 공산당 아래에 있는 조선인 당원들이 앞장서서 사회적으로 폭력적인 행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 당시 일본사회는 엄청난 불화가 일어났어요.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총련이 시작됐습니다. 일본에서 사린가스(독가스) 사건이 있었습니다. 옴진리교라는 관계 단체는 일본에서 ‘해산단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일본에는 2개의 감시단체가 있는데 일본에서 오랫동안 폭력 투쟁을 해 온 일본 공산당과 총련입니다.

지금 민단으로 총련계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많이 입단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조선대학교 남학생들은 북에 가서 군사훈련도 받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1년 내에 돌아오면 입국이 가능했습니다. 군살훈련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없습니다.

작년 8월15일 광복절 때 제가 한가지 호소문을 발표했었습니다. 1959년에 시작된 재일동포 북송(北送)사업은 약 9만6천 명의 동포가 북으로 넘어갔습니다. 이 중 일본인도 7천여 명이 있었습니다.

당시 북송된 재일동포들은 지금까지도 생사불명입니다. 북송사업은 총련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난 해 광복절에 이들의 생사를 확인해달라고 총련에 요망했는데 며칠 뒤 저들의 기관지 조선신보에 “민단 단장이 망언을 했다”고 보도됐습니다. “지난 옛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북송사업은 지금도 문제가 되고 가족들도 살아 있으니 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총련도 북을 싫어합니다. 자신의 가족들이 인질로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金東吉 :
우리 여건이 단장에게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개인의 삶에도 질곡이 있듯이 국가도 그러합니다. 오늘 정권을 담당한 사람들은 20년을 그대로 나가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올바른 국가의 조건은 정치적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또 경제적 시장경제를 지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과 미국 관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들과 친선을 도모하고 과거는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해야 한반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악전고투를 하시는 민단의 단장께서 친히 오셔서 우리와 자리를 함께 하시면서 지금 고민을 들어보고 특별히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에서 사는 동포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이해하고 그것이 정치에 반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조총련과 행사를 하라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인격, 자존심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 4월 11일 여건이 민단중앙 단장이 김동길 박사와 대담을 하고 있다.

呂健二 :
지난 2006년 민단 단장이 독단으로 총련 본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총련 의장과 악수하고 내일부터 교류하자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본 정치인들 사이에서 “민단이 배신했다”고 술렁이었습니다. “우리는 민단을 믿고 교류와 협력을 해왔는데 민단이 총련으로 넘어갔다”고 ‘민단의 배신’이라며 불쾌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단이 한동안 난처한 입장이 됐습니다.

결국 당시 하병옥(河丙鈺) 단장은 민단에서 퇴출됐습니다. 이러한 경험도 있고 3.1절 얘기인데요. 지난 1946년에 우리가 민단을 창단하고 이듬해 히비야공원에서 5천명이 모여서 세계 최초로 삼일절 기념식을 개최했습니다. 그 뒤에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삼일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도쿄 유학생 600여명이 모여서 2.8독립선언을 했는데 이것이 3.1운동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2.8독립선언도 올해가 100주년입니다만, 우리는 그동안 계속해 왔습니다. 그리고 삼일절뿐만 아니라 관동대지진 위령제도 지속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총련은 3.1절 기념식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북한 정권은 3.1운동을 ‘실패한 운동’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처럼 위대한 영도자가 없는 운동이기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북한은 삼일운동과 관계없이 김일성 주도로 나라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함께 하면 논리적 모순입니다.

지난해 4월에 남북 양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았지만 북측에서 절대 안된다고 한 것입니다. 북한이라는 나라를 만든 것이 3.1운동이 아닙니까? 그러나 북한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3.1운동을 기념하지만 북한은 관계 없습니다. 올해는 총련과 그러한 움직임이 하나도 없고 민간단체를 만들어서 민단과 같이 하자고 합니다. 3.1운동의 이름을 빌린 ‘민단 박해 운동’입니다. 이것은 공작입니다. 북한이 지도하고 있기에 계속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재일동포사회의 실상입니다.

金東吉 :
고맙습니다. 먼 길을 오셔서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청하신 여러분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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