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조 / 한국협동조합학회 이사

사계(四季)가 분명한 기후 탓일까. 예로부터 우리는 맺고 끊는 것을 좋아한다. 심지어 인간관계조차도 네편 내편 구분을 명확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갈등과 대립, 분열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옛일 하나를 떠올려보자.

1590년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한다. 일본을 살피고 돌아온 정사(正使) 황윤길과 부사(副使) 김성일은 선조에게 정반대의 보고를 한다. 황윤길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 주장했고, 김성일은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강변한다. 당시 조선은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져 대립했다. 황윤길은 서인, 김성일은 동인이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복욕을 간파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반대편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당파의 힘은 백성의 안위보다도 나라의 장래보다도 더 크고 강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결국 임진왜란을 불렀다.

갈등과 대립으로 파국을 초래한 역사는 너무 많아 열거하기 힘들다. 최근 일어나는 일만 보더라도 보수와 진보, 노동과 자본, 심지어 여성과 남성까지 편을 가르고 힘을 겨룬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극심한 반목 속에서 서로 믿지 못하는 ‘저신뢰 사회’가 돼 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나온다. 특히 갈등 관리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점이다. 사회 갈등도 갈등이지만 이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한 노력과 관리 또한 미흡하다는 뜻이다. 마음을 열고 협동하는 일에는 인색하고 배타적인 이기심만 횡행하는 현실을 놓고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많은 이는 갈등으로 인한 불신과 증오의 위험 수위가 도를 넘어섰다고 입을 모은다.

오랜 세월 공동체의 가치를 실천해온 사람으로서 호소드린다. 이제 사회 전반에 만연된 담쌓기, 편가르기 등의 분파적 행위를 멈추도록 하자. 갈등과 대립, 분열의 끝에는 늘 파국과 절망만이 남았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예로부터 우리는 계, 두레, 품앗이 등을 통해 공동체의 미덕을 공유하고 실천해왔다. 협동과 상생을 신조로 삼는 공동체 의식은 갈등을 녹여 에너지로 만드는 용광로 같은 존재다. 흔히 ‘은혜는 물결 위에 새기고 원한은 바위에 새긴다’고 한다. 생각과 뜻이 다르다고 예의를 무시하고 비난과 조롱을 일삼는 일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원한만 쌓을 뿐이다. 원한이 쌓이면 제아무리 튼튼한 공동체라도 금이 가고 허물어진다.

바야흐로 우리는 다양한 이슈를 쏟아내고 그 이슈에 대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각자의 의견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나’와 ‘너’를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태도, 그로 인해 극단적인 대립과 혐오가 표출되는 사태는 더 이상 곤란하다. 다양한 구성원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회, 포용적인 자세로 협동과 상생을 모색하는 사회가 될 때 비로소 ‘사람이 중심인 따뜻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요즘 가뜩이나 공기가 나빠 너나없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이 하얀 가면 때문에 민얼굴로 마주하는 사람의 온기마저 사라지는 듯하다. 부디 칼날 같은 삭풍이 불어와 불청객 미세먼지와 더불어 한국사회의 해묵은 진영논리까지 날려 보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