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모 /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의창의 문제점은 이것저것 다 말하면서, 왜 그 점을 해결할 방도(救弊之術)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이 없는가.”

1439년(세종 21년) 10월 세종이 국무회의에서 신하들에게 한 말이다. 의창(義倉)은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추수 때 이자를 붙여 거둬들이는 구휼기관이다. 일본인들이 “우리도 조선에서 태어났더라면 의창의 혜택을 볼 텐데”라며 부러워했던 복지제도이기도 하다(세종실록 21년 2월 7일 자). 하지만 흉년이 몇 년간 계속되면 저장 곡식이 바닥나 운영이 어려워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3년 전인 1436년 ‘병진 대기근’ 때는 군량미를 전용(轉用)해 의창을 운영해야만 했다.

또 다른 문제는 백성들의 지나친 정부 의존 태도였다. “추수를 하면 계모임이다, 부처 공양이다 혹은 신령에게 치성드린다 하고 곡식을 남김없이 낭비하고서, 내년에 파종할 씨앗은 의창에서 빌리면 되니 무슨 걱정이냐”라고 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수령들 역시 우는 소리로 굶주림을 호소하는 백성들을 계속 외면하기 힘들었다. 민생을 외면했다는 조정의 견책을 피하기 위해 곡식을 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창은 그 제도는 처음 도입되던 고려 때부터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조선 태종 때는 수령들이 창고를 채우기 위해 곡식을 빌려 간 백성들을 채찍질하고 참혹하게 매를 때리는 폐단이 발생하기도 했다. 문제는 세종의 말처럼 비판만 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신하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 지점에서 세종의 리더십, 특히 인재들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흘러들어오게 하는 경청화법이 효과를 발휘했다. 그는 신하들을 꾸짖거나 처벌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크게 부끄럽다” “백성들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면서 자신을 최대한 낮추었다. 앞의 국무회의 때도 세종은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그 해법도 있을 것이로되 “나도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 요령을 얻지 못하였다”면서 조언을 절실히 요청했다.

그런 경청 리더십 덕분인지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은 무려 5개월에 걸쳐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역대 구휼제도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신하도 있었고, 그전에 제안됐으나 버려져 있던 아이디어를 되살린 사람도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사창(社倉)제도라는 혁신적인 구휼제도다. 사창은 관곡을 기반으로 하되 주민의 출자(出資)가 더해졌다. 전적으로 관곡으로만 운용되는 의창과의 차이점이다. 사창의 관리를 지역의 명망 있는 인사와 주민들이 함께한다는 점도 수령에 의해서만 운영·관리되는 의창과 달랐다. ‘빈민 구제는 국고(國庫)를 다 털어 베풀더라도 끝내 해결할 수 없으며,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 제도였다.

실제로 사창제도는 집현전의 검토를 거쳐 1448년(세종 30년)에 대구 지역에서 시범 실시됐다. “사람들이 모두 이롭게 여긴다”는 현지 보고에 따라 경상도 여러 지역으로 확산됐고, 임진왜란 이전까지 의창, 상평창과 더불어 전문적인 구휼제도로 정착했다.

지난주 세종실록 강독모임에서 실록의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많은 분이 우리 현실을 개탄했다. 문제점 없는 정책은 없을 텐데, 왜 우리는 문제점만 얘기하고 그 해법을 제시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세종시대 사람이라면 남북문제를, 에너지정책, 미세먼지 등 환경정책에 어떻게 접근할까? 아마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들의 겸손한 경청의 자세, 전문가들의 탈정치적 대안 제시, 그리고 공무원들에게 내맡기는 대신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믿고 기다리는 자세에서 그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