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손상하 주필리핀 전 대사

JTS 구호활동이 이슬람지역에만 국한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지역에서도 하고 두 종교가 혼재하는 곳에서도 한다. 이 활동의 성과는 학교를 세우고 구호품을 전달하고 길을 내는 가시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촉진시켜주는 화해와 협동 그리고 평화를 향한 작지만 희망의 싹이 보이는 진전에 더 무게가 있다. 구호활동은 자원봉사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사업이 벌어지는 지역주민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와 이념으로 분열된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타운 미팅을 하기도 하고 삽을 들고 공사장에 나가 땀을 흘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새마을운동과 흡사하다. 이것은 주민들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협동정신의 실험인 것이다.

학교가 세워지면 교사가 있게 마련이다. 반군이라 하더라도 교사는 정부가 파견하는 사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대화가 단절된 정부와 반군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화해의 실마리이자 불신의 땅에 작고 가냘프지만 한가닥 희망을 심어주는 평화의 빛이기도 하다. 증오와 갈등, 테러와 충돌로 점철된 민다나오 역사에 이것은 확실히 새로운 바람인 것이다. 그 바람을 일으키는 선두에 이원주사장이 서있는 것이다.

이사장은 자신의 개인 사업에 신경 쓰랴 민다나오 봉사현장에 다녀오랴 대단히 바쁘다. 진행되고 있는 구호사업을 점검하는 일 외에도 새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또 다른 오지를 찾아가야 하고 그곳 마을 지도자들의 협력도 얻어내야 한다.

그가 가는 곳은 험난하기 짝이 없는 정글 속이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신변안전조차 보장 받기 어려운 위험지역이 많다. 따라서 정글 속을 몇 시간이고 걸어서 가거나 때로는 강을 따라 스피드보트를 타고 가기도 한다. 가는 도중에 산거머리에게 피를 빨리는 것은 보통이고 모기 같은 독충의 공격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반군 영향 하에 있는 곳은 반군의 호위를 받아서 왕래한다. “신(神)도 어딘지 찾기 힘들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깊은 밀림지역을 그는 찾아간다. 문명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오지 중의 오지를 누비다 보면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이해가 되고 조그만 희생과 봉사가 얼마나 값진 일인지 보람을 느끼게 된다.

이사장은 이곳에서 보고 받은 충격을 이렇게 말했다. “돼지, 닭, 개, 아이들… 그들은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동물인지 구별할 수 없이 서로 뒹굴고 있었다. 아이들의 머리는 이, 종기, 흉터로 뒤범벅이 되어 사람의 형상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도우러 온 이방인을 처음에는 선뜻 환영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교실이 완성되고 아이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원주민과 고락을 함께 하면서 서로가 하나가 되는 감격을 이보다 더 리얼하게 느낄 수 없다. 이들과 얼싸안고 감격을 나눌 때 이사장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민다나오 오지, 빈곤의 늪 - 필리핀정부도 반군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한국인 이원주씨가 하고 있다. 종교와 정치와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분열되어 싸우는 가난한 사람들 마음에 자비와 사랑을 심는 일을 그는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인애(仁愛)를 베푼 대가로 그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 주는 이는 없지만 이원주 사장은 오늘도 목숨을 내걸고 민다나오 오지를 오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얼굴에 먹칠하는 어글리 코리안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한국인이다. 나는 500만 재외국민 가운데 이원주사장처럼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