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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머리 고지에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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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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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 통일연구원 원장

한국전쟁 때 왜 고지전을 멈출 수 없었을까?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기지 못한 고지전에서 수많은 병사들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협상은 고지전이 아니다. 고지전은 양보를 패배로 보지만, 협상은 주고받아야 성공한다. ‘치유의 정치’를 이해해야 비핵화 협상도 길을 찾을 것이다.

‘살아서 집에 가자.’ 영화 <고지전>에서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중대장이 병사들에게 한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다시 만난 병사는 드물었다. 전투는 중단되었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기에 유해를 수습할 수도 없었다. 6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화살머리 고지에서 첫번째 유해를 발굴했다. 박재권 이등중사다. 그는 휴전을 17일 앞둔 1953년 7월10일 이곳에서 산화했다. 살아서 집에 갈 수 없었던 그의 영혼이 마침내 집으로 돌아간다.

고지전은 한국전쟁의 특징이고, 냉전의 배후였다. 낙동강까지 내려갔던 전선이 다시 압록강까지 올라갔다가, 현재의 군사분계선 근처로 이동하는 시간은 1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후 2년은 고지전이었다. 고지전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아주 오랫동안 악몽을 꾸었다. 전후의 한반도에서 고지전은 증오를 퍼 올리는 저수지였고, 두 개의 이념이 충돌하는 끝나지 않은 전선이었다. 이제 고지전을 끝내자. 고지전의 상처를 과연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여전히 이념의 고지전을 계속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른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이 아주 오래전에 시작되었음을.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이념논쟁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역사를 알아야 한다. ‘완충공간으로서의 비무장지대’는 65년 전에 체결한 휴전협정의 핵심 내용이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누가 제일 처음 제안했을까? 1972년 2월 김용식 외무부 장관의 제안으로, 바로 보수 중의 보수, 박정희 정부 때다. 박정희를 숭배하는 분들은 자신의 숭배 대상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후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구상은 진화의 과정을 밟았다. ‘비무장지대에 공동경기장을 만들어, 남북의 친선경기를 하자.’ 지금 들어도 신선한 상상력이다. 이 말의 주인공은 바로 1982년 전두환 정부 때의 손재식 국토통일원 장관이다. ‘비무장지대에 평화시를 만들어 이산가족이 만나고 상품교역을 하고 민족문화관을 짓고 학술교류를 하자’는 제안자는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다. 나아가 그는 1989년 ‘비무장지대 안에 남북연합의 기구와 시설을 설치하자’고 했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쉽게 꺼내기 힘든 파격적이고 과감하며 담대한 주장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합의의 교집합을 발견할 수 있다. ‘전쟁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식이고, ‘우발적 충돌의 근원을 해소하기 위해 완충공간을 만들자’는 말 역시 부정하기 어려운 합리다. 여러 정부에 걸쳐 아주 오랫동안 진화의 과정을 밟은 구상들을 이제 실행할 때가 왔다. 화살머리 고지에서 유해를 수습하는 일이 첫걸음이다.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공동체의 제례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고지전은 북핵 협상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남·북·미 삼각관계에서 북-미 관계가 멈추면 남북 관계도 속도를 내기 어렵다. 북한과 미국이 협력적 비핵화의 원칙을 확인하고, 기술적 쟁점에서 지혜를 발휘하기를 바란다. 다만 협상 참여자들은 이 협상이 ‘고지전의 유산’을 극복하는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 때 왜 고지전을 멈출 수 없었을까?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기지 못한 고지전에서 수많은 병사들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협상은 고지전이 아니다. 고지전은 양보를 패배로 보지만, 협상은 주고받아야 성공한다. ‘치유의 정치’를 이해해야 비핵화 협상도 길을 찾을 것이다.

물론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알기에 현재의 교착에 비관할 필요는 없다. 그런 점에서 화살머리 고지는 정세의 역진을 막는 동력이다. 지뢰를 제거하고 길을 내고 유골을 수습하고 협력의 공간을 만들면, 다시 말해 고지전의 격전지를 평화와 공동번영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면 정세를 관리할 수 있다. 후진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할 수 있으면 언젠가 전진의 기회는 온다.

정세가 풀리지 않으면 언제나 ‘우리 안의 분단’이 요동을 친다. 이념의 고지전이 재현되는 현실은 분단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상식과 합리의 연대가 필요하며, 대화와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화살머리 고지는 ‘증오의 기억’이 아니라 ‘화해의 기억’을 위한 공간이다. 화살머리 고지에는 남과 북의 병사뿐만 아니라 미군과 중공군, 프랑스군도 묻혀 있다. 국제사회도 화해의 공간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화살머리 고지에서 65년 만에 발견된 병사는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제 ‘해원, 원한을 풀 때다’라고. 집에 가자, 영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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