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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민족주의, 그 업보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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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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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명 / 논설위원

   
 

내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 39주기가 되는 날이다. 요즘 누가 10·26에 관심을 갖겠나. 딸은 갇혔고 정치적 유산을 계승한 세력은 폭삭 주저앉았다. 박정희는 애초 그 성취(경제 발전)의 결과(민주화)로 말미암아 부정당할 운명이었다. 수도 없이 난타 당한 박정희의 과오를 새삼 들춰 헤집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 못 된다.

그럼에도 요사이 `우리 민족끼리` 담론과 그 맹목성을 지켜보며 박정희의 책임을 생각하게 된다. 지난 8월 광복절 및 정부 수립일을 전후해 `건국 70주년`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이 격돌했다. 19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 평가를 놓고 벌어진 역사관 전쟁이었다. 1980년대 이후 좌파 민족주의는 단독 정부로 시작된 대한민국 건국을 민족사의 굴절, 불의의 득세로 규정했다. 이들에게 이건 `건국`이 아니다. 그 시기에 나온 책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이 관점을 대표하며 청년기에 `인식`을 읽었던 현 정권 주도층은 이 시각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반면 우파는 사회주의가 시대 조류였던 해방 정국에서 남한이나마 자유시장경제를 택해 발전한 것을 기적이라고 본다. 민족보다는 체제를 우선하는 관점이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지금 우파를 떠받치는 양대 기둥으로 한쪽을 부정하면 나머지 한쪽도 무너지게 돼 있다. 그러나 정작 박정희 본인은 이승만과 그가 주도한 건국 평가에 매우 인색했다. 박정희가 대통령 자격으로 행한 1964년부터 1979년까지 16편의 8·15 기념사를 읽어보았다. 이 중 1968년과 1978년은 각각 정부 수립 20주년, 30주년이 되는 해다. 1978년 연설은 먼저 광복 33주년을 축하한 뒤 "오늘은 또 우리 대한민국 정부 수립 30주년이기도 하여 감회가 더욱 새롭다"고 딱 한 줄 언급하고 있다. 1968년엔 그조차 없다. 16번 중 정부 수립을 한마디라도 언급하고 지나간 것은 1978년과 25주년이었던 1973년 두 차례뿐이다. `건국`이란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 박정희가 살아 있었다면 건국 70주년 논란과 관련해 어떤 입장을 취했을지 궁금하다.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를 지냈으므로 친일파라는 주장이 있다. 폭력적으로 단순한 논법이다. 적어도 대통령 박정희는 민족 지상주의자에 가까웠다. 유신을 몇 달 앞둔 1972년 광복절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27년 전(1945년) 오늘, 우리가 모두 하나의 민족으로 굳게 단결하여 자주 독립의 의지와 예지를 십분 발휘했더라면 그 누구도 우리의 통일을 저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어진다. "이념보다 조국을 먼저 생각하고 체제보다 민족을 먼저 사랑하였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민족의 긍지와 영광으로 찬연히 빛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보다 민족을 상위에 두는 논법이다. 이 말을 다른 대통령이 했으면 역사관 논란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박정희는 민족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지금 기준으로 우파보다는 좌파 쪽에 가깝다. 백범 김구를 복권시켜 민족 진영 우상으로 받들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정통성을 부여한 것도 박정희 때 일이다.

박정희는 민족의 자주·자립을 절대 가치로 내세워 전 국민이 똘똘 뭉치게 했다. 민족 관념은 그 전에 이미 생겨나 있었지만 박정희는 여기에 선을 그리고 색깔을 입혔다. 그것은 다른 근대국가에서 보기 힘든 배타적, 종교적 국가민족주의였다. 박정희 반대 진영은 전체주의적 개발국가 체제에는 분노하면서도 그 바탕에 있는 민족주의는 비판 없이 수용했다. 민족해방론에 탐닉한 1980년대 운동권이야말로 그런 점에선 `박정희 키즈`라 할 수 있다. 그들 이후 박정희 민족주의에서 반공을 뺀 변종 민족주의가 한국 좌파 운동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북 비핵화 국면에서 현 정권 주도세력은 미국의 견제를 무릅쓰고 `민족`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고 되어 있는 4·27 판문점선언 제1조 1항은 그 모든 것을 응축하고 있다. 민족 앞에서 인권과 자유, 정의, 기타 보편성에 기반한 상식이 다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정치가는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다. 이 기괴한 민족주의 또한 박정희의 업보라고 한다면 39주기를 앞두고 너무 야박한 얘기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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