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8.10.19 금 17:51
재외선거, 의료보험
> People/커뮤니티 > 교포인사인터뷰
뉴욕 박준구 회장은 말한다
편집부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8.08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264호 OKTimes ‘이구홍 이사장과의 대담’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뉴욕협의회 회장(2003~2005)과 국제교류재단 사업이사(2007~2008)를 역임한 박준구 회장을 초대하여 4.27남북정상회담 이후 펼쳐지고 있는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는 미주동포들의 움직임을 들어보았다. 현재 박준구 회장은 ‘북한어린이돕기재단(International relief fund for children)’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남북 교류의 발전과 통일한국을 위한 미주 동포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보수 편향의 질곡-시대의 흐름에 맡겨보자

   
 

이구홍 이사장: 요즈음 우리 민족과 동포들의 삶과 미래에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칠 변화가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의 판문점 회담으로부터 시작되어 북미 정상회담으로까지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가히 폭발적인 변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국내외를 막론하고 국민들이나 동포들의 반응을 보면 사소한 정부 정책 하나만 바뀌어도 지지성명이니 규탄성명이니 하여 온갖 잡음이 끊일 새가 없었던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일본 민단도 그렇고 미주 동포사회에서도 민단이나 미주 총연 이름을 내세운 공식적인 반응을 꼽을 수가 없어요. 동포사회가 지금 왜 이렇게 변하고 있나 하고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뉴욕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여기에는 무슨 까닭이 있다고 보십니까?

박준구 회장: LA평통이 지지성명을 발표하기는 했지요.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동포사회에 파문을 일으킬 정도는 못된 듯합니다. 뉴욕 같은 경우는 회장이 불미스럽게 사표를 내고 신임회장을 선출하고 있던 상황이라 지지든 반대든 아예 기대할 수 없었지요. 사실 평통이라면 민주평화통일을 자문하는 헌법기관이니까 지지성명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이지만 실상을 보면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여년 사이에 보수 편향이 강화되어 정권이 바뀌었다고 당장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어요.
아직까지도 해외에는 보수 수구세력이 막강하고 기세는 좀 꺾였지만 박근혜 추종세력을 중심으로 ‘박정희기념사업회’나 ‘재향군인회’, ‘월남참전용사회’등의 단체들이 이 정부에 반대하는 데모들을 많이 해요. 더욱이 작년에 박근혜 탄핵을 둘러싸고 태극기 세력과 촛불 세력으로 갈리면서 미주 동포사회도 그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어요.
내가 평통 뉴욕지부 회장을 하던 지난 2003년 무렵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거든요. 이명박, 박근혜 시대 10여 년을 거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보수 세력의 기세가 어찌나 거세던지 거기에 짓눌려 진보 인사라고 하던 사람들은 숨 죽이고 지냈지요. 작년 대선에서 뉴욕대선운동본부 대표로 활동했었는데 과거에 일 했던 사람들조차 몸을 사리고 모임에 아예 나오지를 않는 겁니다.
남북회담 지지 바람이 일지 않는 것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 상에서 그 지지층이 세력화가 되지 못한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대 의식의 변화는 정권 재창출과 함께 10여년은 걸리는 긴 여정이다

이구홍 이사장: 맞아요. 얼마 전 일본에 갔을 때도 예전에 진보인사라고 하던 사람들도 이런 시대적 이야기가 화제로 오르면 자리를 피하려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지요. 아무튼 시대 의식이 상당히 보수화된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그 수구 세력들은 잠재 세력으로 들어가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이런 시대 상황이 어떻게 변화되리라고 보십니까?

박준구 회장: 이런 분위기는 상당히 오래 갈 것으로 보입니다. 지지층이 세력화 되는 데에도 5년은 지나야 가능하며 그 변화가 정착하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면 일관성 있는 정권의 재창출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동포사회 구성원들의 성향을 보면 알 수 있는 겁니다.
동포사회를 이끌어가는 세력 중 양 극단의 보수나 진보 인사들보다도 중간의 60%정도 되는 중심층의 움직임이 주목되는데 이 사람들의 기본 성향은 다분히 권력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진보든, 보수든 어떤 정치철학으로 이름 붙이기가 어렵고 한국정부의 통일정책에 맞추려는 권력 쏠림형 성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보수적인 인사라고 지칭받던 사람이 평통 회장에 새로 선임되어도 이내 한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가려고 스스로 애쓴다는 겁니다. 이런 변화의 여지가 있기에 저는 기다리며 다가오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시대를 앞서간 노무현 정부

이구홍 이사장: 노무현 정부 시절에 뉴욕평통 회장을 맡으셨지요. 그때도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박준구 회장: 노무현 대통령 하면 알게 모르게 작용하던 우리 사회의 기득권의 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희망과 도전의 길을 열려고 노력했던 분 아닙니까. 그래서 평통회장에도 야심적으로 시민사회 출신을 널리 찾았는데 뉴욕회장으로 제가 추천되었지요. 그런데 노 대통령이 취임한지 겨우 1년여 되어서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의 반격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대통령 탄핵 규탄 및 의회권력 규탄 성명서를 평통 회장의 이름으로 뉴욕의 한국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등에 전면광고를 내었지요. 그랬더니 평통의 전직 회장단을 중심으로 40~50명이 사표를 내고 “박준구 물러가라!”는 등 난리가 난 겁니다. 그들의 사표 이유는 초당적 기구인 평통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지 회장이 편향되게 전횡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원들이 이렇게 나오면 방법이 있습니까. 이 조직을 주관하는 정부에 물어볼 수 밖에요. 당시 ‘그 정도 일도 감당을 못하는 배짱을 가지고 뭘 하겠냐?”며 자체적으로 수습하기를 권하던 평통의 주관 부서인 통일외교안보정책실 김진향 행정관의 말이 기억납니다. 결국 도저히 설득이 안 되는 11명은 사표수리하고 나머지는 설득해서 평통의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따라 남북 교류사업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보수 성향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수 성향의 임원들도 노무현 정부의 통일 정책에 쉽게 따라올 수 있었고 북한 어린이 지원을 위한 모금운동도 활발하게 전개하여 북한 고성군 탁아소에 분유 10여만 달러치를 지원하는 등 만은 사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북측에서는 금강산 고성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를 인수하였습니다. 그 뒤 금강산 고성군에서 빵공장 지원을 요청하여 또 기금을 모아 내가 직접 방문하였는데 그 무럽 뉴욕신문에 ‘헐 벗고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라는 기사가 보도 되었습니다. 그러자 고성군 인민위원회 대표가 신문을 들이대며 “우리를 거지로 아느냐?”면서 지원을 끝내 거부하더군요.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당시 모금한 기금은 ‘어린이돕기재단(영어명칭:International Relief Fund Chidren)’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습니다. 다시 전달할 날이 오겠지요. 저는 이런저런 인연으로 2007년에는 재외동포로서 최초로 국제교류재단 사업이사로 추천되었었고 본국과 미국을 연결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구홍 이사장: 그런데 그때 서울에서는 김근태 전 의원의 측근이란 소문이 돌았지요. 어떤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가요?

박준구 회장: 허허, 지금도 그렇지만 국내 정치인들과는 청탁할 만한 인연은 없습니다. 김근태 의원도 마찬가지로 우연히 알게 된 것이지요. 원래 김근태 의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비판적 지지를 표방하며 처음 국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 뒤 김근태 초선의원이 처음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상인’ 환영모임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런데 보아하니 신발도 다 헤지고 그야말로 배고픈 국회의원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뉴욕 맨해튼의 300여 명의 한상들이 몰려있는 ‘소호’지역에서 한상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이런 초라한 김근태 의원을 모시고 가게마다 소개하면서 신발이며 양복이며 모두 새로 마련해 주었지요. 그런데 통성명을 하고 보니 65학번 서울대 입학 동기더라고요. 그래서 김근태 의원 후원회장을 잠시 맡았고 그 뒤에 김 의원이 뉴욕을 다시 방문했을 때는 ‘김근태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거창하게 환영대회를 열어주었지요. 그렇게 한때 호기를 부린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옛일이 되었군요. 그 뒤로는 한국 나올때 김 의원이 운영하던 ‘한반도재단’에 몇번 들린 적은 있었지요.

동족이 굶어 죽는데 구경만 하는 너도 동족이냐

이구홍 이사장: 알만 합니다. 좀 오해를 받아도 서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한인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박준구 회장: 저는 1975년 LG그룹 뉴욕 지사장으로 처음 뉴욕에 발을 디뎠어요. 그러다가 다른 일을 해보고자 NYU행정대학도 다녔으나 결국 비즈니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999년 USA투데이지에 ‘북한 식량난으로 300만명 아사’라는 기사가 난 적이 있었지요. 그때 같은 비즈니스를 하던 옆 가게의 미국인 친구가 “네 나라 어린이가 굶어 죽고 있는데 남북이 갈렸다고 가만 있느냐? 그게 무슨 동족이냐?”하며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엄청 충격을 받았지요. 그 충격을 계기로 ‘우리민족돕기 뉴욕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여 실행위원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이 단체의 근간이 되는 종교계(카톨릭, 불교, 개신교)와 한인사회 전반을 돌며 35만 달러의 기금을 모았고 그 기금으로 중국에서 쌀을 구입해서 북한에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계기가 되어 미주 한인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미국내 소수민족인 한인들의 권익 향상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미국 내 소수민족인 한인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다양한 일을 하게 되었지요. 언어장애로 공권력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동포를 위한 반아시아 폭력저지위원회 활동을 비롯해서 미 상무성이 10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센서스의 NY한인추진위원장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으로 홍보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때가 엊그게 같습니다.

재외동포 2세 교육은 재외동포 정책의 백년지계(百年之計)

이구홍 이사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들으면서 오늘 대담을 마무리하도록 하지요.

박준구 회장: 저는 이제 재외동포로서 40년을 살았습니다.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은 재외동포도 국가 발전의 한 축이라고 인정한다면 이제 모국은 재외동포를 관리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연대한다는 생각을 정립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그때 가장 중시해야 될 일은 한인 2세들에게 연대의식과 뿌리의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미국의 이민정책은 그 근본 방향이 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민을 오되 미국에 동화되라는 뜻이지요. 아메리칸화 된 동포 2세들은 아이덴티티 교육 없이는 할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나라에 대한 연대의식이나 뿌리의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빅터 차와 같은 미국인을 결코 한국인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오히려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 동포를 미국에 빼앗긴 셈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여름캠프 같은 초청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이들에게 우리 역사와 문화 현장을 탐방케 하고 DMZ를 방문하여 민족 분단의 아픔도 실캄케 하고 한국어도 가르쳐 뿌리의식과 연대의식을 함양하는 지원이 절실한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재외동포재단이 세계 한인사회에 2천 달러, 3천 달러씩 지원하고 있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고 그자금을 2세들을 지원하는데 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국제교류재단의 사업이사로 재직 중 업적 하나를 꼽는다면 뉴욕의 5개 고등학교에서 제2 외국어로 한국어를 채택하게 만든 일입니다. 교포 2세들이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할 수 있다면 대학 가는 데 상당히 유리하죠. 제가 한 일은 재단의 외국 교사 초청 프로그램에 파격적으로 교장 5명을 초청한 것입니다. 이들은 한국의 역사 문화 현장을 돌아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분들이 돌아가서 한 일이 바로 한국어를 그 학교의 제2 외국어 과목으로 채택한 것입니다. 이런 고등학교가 늘어날수록 한국어 교사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또 한국어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 럭커스대학 재단과 제휴하여 한국어 교사를 양성하는 계획을 실행하였습니다. 에피소드이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저에게 국제교류재단 이사를 사직하라는 압력이 내려오자 뉴욕에서 이분들이 정부를 설득하려고 한국에 오지 않았겠어요. 그것이 이명박 정부에 통하겠습니까? 한국정부 기관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아무튼 교육은 나라의 백년지계(百年之計)라는 말이 국내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님을 잘 새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담 / 이구홍 본지 발행인
사진 / 최유정 기자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