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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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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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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 런던 특파원

   
 

지난 5월 결혼식을 앞두고 영국 해리 왕자와 할리우드 배우 출신 메건 마클은 지인들에게 초청장을 보내면서 드레스 코드를 적었다. 남성은 정장 차림으로 여느 나라 결혼식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여성은 달랐다. 드레스에 필수로 모자를 써 달라는 요청이 담겼다. 실제 결혼식장을 찾은 여성 인사들은 드레스와 어우러진 모자 패션으로 시선을 끌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공식 행사 때 늘 모자를 쓰는 것처럼 왕실 문화가 활성화된 영국에서 모자는 독특한 패션 영역으로 인정받는다.

매년 6월이면 런던 지하철이나 철도역에는 화려한 모자를 쓴 여성들이 눈에 띈다. 왕실 주최 경마대회 ‘로열 애스콧(Royal Ascot)’에 가는 행렬이다. 1711년 앤 여왕이 왕실의 위상을 높일 목적으로 창설한 이래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빼고 중단된 적이 없는 이 대회는 사교의 장으로 인기다. 여성은 무릎 아래 길이의 드레스에 모자가 필수 복장이다. 평소 쓰지 않는 화려한 모자로 한껏 멋을 낸 이들이 수다를 떠는 모습은 신분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사회에 던지는 유쾌한 도전장 같기도 했다.

여성 모자 제작의 대표 주자는 올해 51세인 필립 트리시다. 2011년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에서 베아트리체 공주는 트리시가 만든 프레첼 과자 모양의 모자를 썼다. 품격과 거리가 먼 디자인의 이 모자가 왕실 결혼식에 등장하자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트리시는 “런던 타워 바깥에 내 머리가 내걸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면서도 “그 모자는 매우 현대적인 것이고, 현대성은 평범하지 않다”고 말했다. ‘프레첼 모자’는 이후 자선 경매에서 1억1000만원가량에 팔렸다. 마돈나와 레이디 가가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그의 모자를 선호할 뿐 아니라 지방시·샤넬 등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도 활발하다.

상업적인 성공에 더해 모자를 예술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는 트리시는 더블린 국립미술디자인대학에 다니며 모자를 만들기 시작했고 런던 왕립예술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했다. 아일랜드의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마을 교회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찾아가 여성들의 복장을 살피는 게 취미였다. 직접 바느질해 여동생의 인형 옷을 만들어 주곤 했다. 최근 BBC 라디오에 출연한 그는 무인도에 가져갈 물건으로 바느질 골무를 꼽았다.

트리시는 오늘의 그가 있게 만든 장면을 소개했다. “제빵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떤 집에 갔습니다. 아버지 친구가 ‘자네 아들이 바느질하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나?’고 했죠. 아버지가 ‘아이가 행복하다면 뭐든지 괜찮다’고 답한 게 지금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유별난 사내아이를 최고 디자이너로 자라게 한 부모의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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