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8.9.19 수 18:15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본국지논단
유랑의 시대와 환대
경향신문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7.0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정은령 / 언론학 박사

   
 

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던 시절 두려웠던 순간은 세미나의 발표를 맡았을 때나, 토론과정에서 하고 싶은 말이 빨리 영어로 표현되지 않을 때나,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두툼한 읽기 과제 앞에서 망연해질 때가 아니었다. 일상의 영위를 위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통과의례. 슈퍼마켓에서 계산을 하는 일이었다. 슈퍼마켓에서 쓰는 단어들이 내가 읽어야 하는 논문의 영어들보다 어려울 리는 만무했지만, 논문을 읽을 수 있는 언어능력으로도 몇 개 되지 않는 생필품을 사는 데 계산원과 두 번, 세 번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다보면 나라는 존재가 슈퍼마켓 바닥에 납작 눌러붙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모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가 이 나라 대학으로 와 박사과정에 있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저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에 불과했다. 언어 소통은 권력관계였다.

뉴욕의 공항에서 렌터카를 찾으러 가던 어느 해, 셔틀버스에 혼자 탄 아시아 여성인 내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던 운전기사는 한국인이라는 대답에 “한국 사람 세탁소가 최고야”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미국에서 한국인과 세탁소, 식료품점을 연결짓는 것은 낯설지 않은 경험이다.

내 부모 세대가 30대였던 1960년대, 한국에서 일자리를 잡지 못한 고학력자들은 먼저 정착한 한국인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 한 장만을 손에 쥔 채 뉴욕의 존 F 케네디 공항에 내렸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그들이 가진 거라곤 일가친척이 모아 준 100달러. 논밭 팔고 소 팔아 한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이들이 이국땅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 세탁이었다. 그들의 전사(前史)나,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나 통하는 얘기일 뿐, 새로 받아들여진 사회에서 그들 대부분은 세탁 노동자였고 불법체류자였다.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내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살아온 이전의 세월을 모두 지운 채 경계의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며 사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영국의 옥스퍼드에서는 파키스탄에서 중학교 교사였던 식료품점 주인을 만났고, 프랑스에서 택시를 탔을 때는 띄엄띄엄 영어로 자신이 튀니지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고 자랑하는 운전사를 만났고, 한국의 경기도 화성에서는 네팔에서 대학을 다니다 한국의 공장으로 돈을 벌러 온 청년을 만났다.

1, 2차 세계대전을 피해 필사적으로 탈출한 난민이었든,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민이었든, 생존을 위해 자신이 태어난 땅을 떠나 유랑하는 것은 20세기 이후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존재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던 할아버지 세대에 이어 한국에서 삶의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오늘의 젊은이들은 노동인구 감소 때문에 해외 노동력을 찾는 이웃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가 가능한 호주로 떠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휴대용 컴퓨터만 있으면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그리는 꿈이지만, 자신의 한 몸을 누일 땅은 그곳이 어디든 결국 현실의 어느 지붕 아래에서 찾아야 한다.

전쟁을 피해 예멘에서 왔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네팔에서 왔건,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을 안고 한국 땅을 밟은 타자의 모습은 기약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다른 나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오늘의 한국인들과 겹쳐 있다. 살기 위해 유랑을 감행해야 하는 시대, 유랑자들이 닿는 세상에서 받게 되는 환대는 절박하게 삶을 붙잡고 있는 이들에게 삶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끈이다. 예수께서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고 세상으로 나아가라”며 열두 제자를 빈털터리로 세상에 내보낸 것은 그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줄 선한 이웃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타국 출신 종업원이 서툰 한국어를 구사하며 쩔쩔매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미국의 슈퍼마켓에서 진땀을 흘리던 나를 떠올린다. 오늘 내가 타자에게 베푸는 환대는 미지의 어느 날 내가 혹은 내 후대가 이 세상 어딘가를 유랑하는 타자가 되었을 때 받기 원하는 대접에 다름 아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