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주관하는 행사 ‘4.3문학의 거장, 김석범과 현기영이 4.3을 말하다’가 4월 6일 저녁 7시 30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로비에서 진행됐다. 대담에는 김석범 소설가와 현기영 소설가가 참여했으며, 노지영 문학평론가가 사회를 맡았다.

재일동포인 김석범 소설가는 소설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를 펴내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제주4.3을 알렸다. 또한 1925년생으로 올해 92세라는 고량의 나이임에도, 제주4.3 70주년을 맞아 방한을 결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기영 소설가는 국내 최초로 제주4.3을 문학적 소재로 삼은 소설 ’순이 삼촌‘을 펴냈으며, 이 사실이 문제가 되어 감옥에 수감되거나 고문을 당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일본에서, 일본어로 써내려간 제주4.3 소설

행사를 시작하며 김석범 소설가는 “일본에서 일본어로 4.3 소설을 쓴다는 것은 대단히 외로운 싸움”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일본문학의 주류는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사소설’이었으며, 일본인은 제주 4.3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시대적 문제를 다룬 소설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것. 김 소설가는 그런 환경 속에서 현기영 소설가의 소설 ‘순이 삼촌’을 읽고, “우리말로 쓴 4.3문학이 있다. 여기에 내 동지가 있다. 난 외로운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런 김석범 소설가는 작년 9월 이호철통일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제주4.3 평화공원에 있는 백비에 이름을 새길 날까지 한국에 오지 않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김 소설가는 “백비에 정명을 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올바른 이름을 새기는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다짐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렇기에 이번에 제주도에서 백비를 세우는 모습은 특히 감격스러웠다며, 김 소설가는 “김명식 작가와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전했다.

제주4.3은 민주주의의 첫 출발

김석범 소설가는 “민주주의의 발전은 투쟁 없이 가만히 앉아서 오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때문에 해방을 맞았지만 독립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던 1945~8년의 해방공간기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3.1혁명의 정신을 이었으며 대한민국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주장한 이승만 정부”는 제주를 희생양으로 삼아 정통성을 꾸며낸 “친일파 정부”라는 것. 그러면서 김 소설가는 “남북이 통일이 된다면 제주4.3은 민주주의의 첫 출발”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현기영 소설가도 동의를 표했다. 현 소설가는 당시 제주 사람들은 남이나 북이 아닌 통일정부를 원했으며 친일파의 청산을 중요히 여겼다고 이야기했다. 현 소설가는 고작 삼사백 명의 제주도민이 “일본인이 남겨놓은 구닥다리 소총을 꺼내 봉기한 것”은 “대한민국을 적색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며, “(제주도민들은) 오빠 된 도리로써, 자식 된 도리로써 일어났다. 4.3은 친일파 청산과 통일을 원하는 첫 항쟁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현기영 소설가는 남북회담이 진행된다면 이렇듯 아프고 처절한 경험을 가진 제주도에서 개최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제주에서 일어난 대학살은 “너무나도 기막히고 참혹한 범죄”

현기영 소설가는 제주4.3을 일컫는 가장 중립적인 명칭은 ‘사건’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은 기본적으로 ‘항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제주4.3의 이면에는 끔찍한 대학살이 존재하기에 쉽사리 정의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현 소설가는“두 사실 중 하나를 강조할 수 없으며 둘 모두를 같이 보듬고 가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제주4.3에서 일어난 대학살은 “너무나도 기막히고 참혹한 범죄”이기 때문에 “인간이 언어로는 묘사할 수 없고 재연할 수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때문에 “문학적으로 4.3을 쓸 수는 없지만, 인간이 언어를 통해 어떻게 진실에 가깝게 갈 수 있나를 고민하며 글을 쓴다.”고 자신의 문학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처절함 때문에 현기영 소설가는 소설 ‘순이 삼촌’을 쓰고도 30년간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지금에서야 흘릴 수 있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현기영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이 “그냥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돌아오시는 영령께 바치는 제물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온전한 사람을 불온하게 보는 것이야말로 불온한 행위

한편 현기영 소설가가 제주4.3에 대해 쓴 자전적 장편 소설 ‘지상의 숟가락 하나’는 과거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에 현 소설가는 “보다시피 나는 아주 온건하게 생겼다.”고 너스레를 떨며 “온건한 사람을 불온하게 보는 사람이야말로 불온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또한 “악독한 유신정권에서는 내가 군벌을 깠으니, 그런 식으로 대응해오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만 “6월 항쟁을 겪고 명목상 민주화되고 진전되는 상황에서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국방부 불온도서로 분류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날 현기영, 김석범 소설가와의 대담은 많은 문학인, 시민들의 관심 속에서 끝을 맺었다. 김석범 소설가는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4.3을 생각하면 슬퍼서가 아니라 반사적으로 눈물이 난다.”며 거듭 눈물을 훔쳐,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