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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와 셔틀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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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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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 도쿄총국장

   
 

조선 왕조가 일본 에도(江戶) 막부에 열두 차례 보낸 외교사절단 조선통신사의 사행(使行) 길은 대장정이었다. 한성과 에도의 육로와 뱃길 4000여㎞를 오가는 데 반년 이상 걸렸다. 사절 규모도 300~500명이었다. 쓰시마 번(藩) 도착 후론 1500명 정도의 일본인이 안내·경호를 맡았다. 행렬은 일대 장관이었다. 쇄국 체제의 에도 시대에 통신사는 이국 문화의 창(窓)이었다. 거리엔 구경꾼이 넘실거렸다. 숙소에선 필담을 통한 승려·문인·화가의 교류가 생겨났다.

막부의 사절 대접은 융숭했다. 노정의 45곳에 객관을 마련했다. 그중 현해탄의 둘레길 6㎞의 작은 섬 아이노시마(相島·후쿠오카현)는 특기할 만하다. 사절은 11번(왕복 22번) 이곳에 묵었다. 번 측은 그때마다 객관을 신축했다. 41개 동을 세운 적도 있었다. 오사카·교토에서 식기·식재·특산품도 들여왔다. 통신사 제술관(기록관) 신유한은 해유록(海遊錄)에서 “사신 일행은 하루에 닭 300여 마리, 달걀 2000여 개를 공급받았다”고 적었다. 통신사의 한 차례 일본 왕래 비용은 막부 1년 예산과 같았다고 한다.

통신사의 발자취가 남은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시즈오카시 세이켄지(淸見寺)에는 사절의 한시(漢詩)와 병풍이 보존돼 있다. 사절은 귀로의 숙박지에서 망향의 그리움과 후지산의 절경을 시로 읊었다. 시작(詩作)은 일본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통신사를 되새기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사절이 체류했던 오카야마현 세토우치시는 1992년 해유문화관을 건립했다. 해유록에서 이름을 딴 이곳엔 조선 촉대 등이 전시돼 있다. 아이노시마에선 지난해 현지 사찰 주지가 기념비를 세웠다. 비에는 ‘성신교린(誠信交隣)’이 새겨져 있다. ‘성의와 믿음으로 이웃 나라와 사귄다’는 이 말은 조선과 막부 간 외교의 기본 이념이었다.

해유록과 접대 기록 등 조선통신사 기록물 333점이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한·일 민간이 손잡고 공동 신청한 결과다. 선대(先代)의 선린 우호 상징을 후대가 재발견해 세계 유산으로 만든 의미는 각별하다. 한·일 간 과거사 단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일 관계는 불행한 역사보다 우호·협력의 역사가 훨씬 길다는 점도 새삼 일깨워 준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일이 정상 간 셔틀 외교 복원에 합의한 지 오래다. 하지만 양쪽 다 뜸만 들이고 있다. 한국은 중국을 꽤 의식하는 분위기다. 조선은 중국 책봉(冊封) 체제 아래서 임진왜란을 당하고도 통신사의 길을 열었다. 조선의 지정학이 가르쳐준 선대의 지혜다. 통신사 200년 동안 동북아는 평화와 문화 교류의 회랑이 됐다. 한·일 셔틀 외교의 개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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