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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방한 날 생각해보는 우리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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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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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 워싱턴 총국장

   
 

트럼프와 아베가 5일 골프를 즐긴 가스미가세키 골프클럽은 재일동포를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 올 3월까지는 여성의 정회원 가입도 불허했다. 일본의 배타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비난도 많이 받는다. 게다가 코스의 기복도 심하고 18홀에 벙커만 130개 있어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면 기분 좋게 라운드를 마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중급자’ 아베가 이곳을 고집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2020년 도쿄 올림픽(골프 종목 개최 장소) 홍보 때문이다. 도쿄 올림픽은 아베의 장기집권 시나리오의 하이라이트다. 원하는 목표를 위해선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는 ‘아베 외교’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방일은 극진 외교의 연속이었다. 그중에도 아베가 트럼프 장녀 이방카를 식당 앞에서 기립한 채 13분이나 기다리던 모습은 압권이었다. 우리 같았으면 “제정신이냐”며 ‘과공’ 비난이 쇄도했을 게다. 하지만 이를 나무라는 일본 국민이나 언론 보도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나라가 다르니 생각이 다른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남이 나를 좋아하면 나도 남을 좋아하게 되는 게 전 세계 공통의 인지상정. 아베, 일본인의 트럼프·이방카에 대한 환대와 열기를 그저 색안경을 끼고 가소롭게 볼 게 아니란 것이다. 그게 곧 미국의 일본을 향한 애정, 일본의 힘이 되니 말이다. 외교라고 다를 게 없다. 일본에 왜 불만이 없겠냐만 트럼프는 방일 중 철저한 일본 띄우기로 일관했다. 받는 만큼 주게 돼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 한·중 관계는 이질적이다. 1년 넘게 사드 보복을 일삼고 한한령(限韓令)을 내렸던 중국으로부터 아무런 사과나 유감 표명이 없었는데, 우리 정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양국 관계 개선’에 합의했다고 반기고 있다. 그뿐 아니다. 이른바 ‘3No’(사드 추가배치, 미 MD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배제)란 선물까지 중국에 안겼다. ‘약속’인지 ‘입장 표명’인지는 중요치 않다. 핵심은 ‘벌을 받고도 상을 줬다’는 사실이다. 왜 우리가 ‘반칙’을 한 제3국에 “한·미·일 동맹이 없을 것”이라 말해줘야 하나. 이런 물렁물렁하고 무원칙한 자세를 보이니 우리 대통령 특사를 하석에 앉히는 오만함은 반복된다. 게다가 지난 6월의 한·미 정상 공동성명 내용을 뒤집는 발표를 트럼프 방한 직전에 내놓았다. 말은 ‘고차원 균형외교’라지만 아군(미국)도, 친구(일본)도, 스스로의 협상력(한국)도 잃은 저차원 외교였다.

트럼프가 오늘 낮 만 25시간 일정으로 한국을 찾는다. 우리에겐 일본 같은 ‘골프 외교’ ‘열렬 환대 외교’는 체질적·정서적으로 힘들지 모른다. 우리 방식대로 진심과 원칙을 갖고 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진심이 의심받고,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반미 시위대까지 꿈틀거린다. 이러다 “아베는 최상, 시진핑은 양호, 문재인은 소원”(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특사)이란 정상 간 ‘케미스트리’ 격차가 이번 순방으로 더 벌어질 수도 있다.

트럼프가 이번 아시아 순방을 기점으로 기존 ‘아시아·태평양’이란 명칭을 ‘인도·태평양’으로 확 바꾼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개념은 아베가 2006년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처음으로 주창한 ‘3+1(일·호주·인도+미국) 연대’ 전략이다. ‘해양세력’ 4개국이 손잡고 중국·북한을 필두로 한 ‘대륙세력’과 맞서 싸우자는 구상이다. 여기에 트럼프가 올라탔다. 큰 판이 바뀌고 있다.
어느 쪽에도 한국의 이름은 빠져 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설 것인가. 경계선에 서 있을 것인가. 오늘 방한하는 트럼프는 그 답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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