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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시민교류의 문화 고양(高揚)과 동포들의 헌신적 모국애를 기억하자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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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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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일전에 외국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발상의 유연성으로 실로 다양한 김치메뉴를 일본사회에 알리고 있는 제자가 요즘 김치의 여왕으로 불린다는 소개를 한 적이 있다. 그 뿐이 아니라 윤동주의 서시를 비롯한 한국의 시에 매료되어 한글로 작품을 적는 일본인 서예가 소개를 한 적도 있다. 물론 이러한 일본인들의 한국 문화 이해와 사랑에 관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시민들의 끊임없는 한국 문화 사랑과 재일동포들의 모국애가 있기에 경색된 한일관계도 험악한 상태까지 치닫지 않고 상호 이해와 존중의 해법을 모색하려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이미 우리도 한류를 통해 주지하는 바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한류문화가 그토록 열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국내 문화의 성장의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국내 문화콘텐츠의 성장과 더불어, 재일동포사회가 1세기를 넘도록 기반을 다져오며 한반도 문화를 다양한 형태로 소개, 정착화 시켜온 기반이 있었기에 문화수출의 대국이라 불리는 일본사회에 친근하고 쉽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게다가 디아스포라의 후손으로 자신들의 삶터를 선택해야만 했던 일본귀화 동포들의 문화적 정체성의 갈등과 고갈을 해소시켜주는 모국의 문화 소프트를 통해, 비록 일본 국적을 선택했지만 문화적 공감과 향유 방법으로 일본 사회의 배타적 흐름을 변화시키는 저력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한 동포들의 노력과 더불어 일본 속의 한국 이해자들의 증가도 큰 한일외교력의 저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한일관계를 잇게 해준 동포와 일본인 연구에도 깊은 관심을 갖다 보니 개인의 역량을 초월하여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게다가 2017년 1학기 말에는 교내외 업무 외의 강연 및 프로젝트 기획, 집중강의 등이 겹쳐져서 결국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몇 군데 병원과 연구실, 집, 책상 앞이라는 트라이앵글 존에 몰리면서 체력에 불안을 느끼고 있을 때, 마치 나를 위해 나타난 듯 한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집 근처의 대형 종합병원 순환기 전문의인 그녀는 필자가 놓여있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긴 시간을 정중하게 이야기를 듣고, 긴급 처방까지 대응해 줬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그녀도 긴급 환자가 많다보니 내 생활을 공감한다고 하기에 힐링방법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음악을 좋아하고, 스포츠 관전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필자가 좋아한 3-40년 전 가수의 노래를 기억하며 좋아한다고 했고, 무엇보다 한국 아이돌 가수인 FT아일랜드의 팬이라서 시간만 있으면 콘서트 장으로 가서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온다고 했다.

더구나 필자의 동생이 활동하는 오사카지역의 J리그 축구팀의 열광팬으로, 수술 등이 없는 날은 그 팀의 축구 응원으로 각지를 다닌다고 했다. 함께 공유하는 내용이 많아지고, 묘한 운명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그녀와의 진료 시간은 즐거움으로 바뀌었고, 필자가 집필한 책 몇 권을 다음 기회에 주기로 약속하며 명함을 주고 헤어졌다. 그런 그녀와의 배려에 따스함과 희망을 느끼며 1학기 말의 산적한 업무를 마쳤을 즈음, 그녀로 부터 긴 메일 한 통이 왔다. 우리가 공감했던 많은 얘기를 통해 소중한 인연(不思議なご縁)으로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쁜 것은 물론, 기쁘다는 말로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귀중한 만남이기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고, 내 건강에 대해서도 상담 상대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도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한 기분으로 9월17일 일요일 오후 3시에 근처의 카페에서 만났을 때, 우리는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들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공시성조차 느끼며 만난 그녀는 필자의 대학원시절, 같은 교토의 공간에 살았었고, 동경대 의대를 졸업 후, 필자가 도쿄에 부임할 시기에 그 종합병원에 착임했었다.

참으로 묘한 필연이라고 할까. 만나기 위한 숨바꼭질을 해왔었다고 할까?

엘리트 친구지만 병원 업무 역시 교수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만큼, 스포츠 관전이나 한국 아이돌 콘서트 장에 가서 자신의 쌓인 감정들을 표출시켜 왔던 것이다. 차분하지만 예리한 부분이 많이 보였고, 여러 어학을 능숙히 구사하는 편이었는데, K-pop 아이돌에 매료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콘서트 장을 다니기 위한 한국말 독학 공부로 얻은 우리말 실력도 바쁜 업무에 공부한 사람치고는 꽤 잘 하는 편이었다.

오후 3시에 만난 우리는 엄청난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화장실 가는 5분을 제외하고는 밤 11시 30분까지 한 시도 쉬지 않고 face to face로 폭넓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카페의 점장이나 직원들도 우리들한테는 아예 포기한 듯 했다. 그렇게 긴 얘기를 주고받으면서도 우리에게 일본인 한국인이란 의식이 없었던 것은 서로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은 물론이고, 그녀에게도 한국인이나 한국문화가 낯설지 않았기에 편견성이 없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10살 위인 내가 [아우님!!] 하고 불러도 쑥스러운 듯 해맑게 웃던 그녀가 오랜만에 만난 친동생처럼 느껴졌다.

그 뒤에도 바쁜 일정 속에 서로 연락을 주고받던 차, 필자는 10월 19일부터 열흘간, 전남대와 광주고려인마을, ‘법과 인권교육학회’ 및 진주교대, 부산외대 등의 각지에서의 기조강연, 특강, 견학 등으로 제대로 쉴 시간조차 없는 이동과 업무로 남부지역을 돌아야 했다.

18일 저녁 마지막 비행기로 부산에 도착해서 바로 광주행 버스로 심야의 광주에 내린 뒤, 호텔방에서 각지서 사용할 파워포인트 및 강연 자료 작성과 학교 업무 대처로 한국에 와 있다는 현실은커녕 제대로 수면시간조차 확보할 상황이 못 되었다.

   
▲ 왼쪽부터 인사하는 '법과 인권교육학회' 박용조 회장, 다문화사회와 인권강연의 필자

다행히도 학회 기조강연을 마친 뒤, 진주교대 수요특강을 맡으셨던 BOA의 권오정 이사장님과 이사로 계신 진주교대 정호범 교수님 및 박용조 학회장님, 경상대 김영석 교수님의 섬세한 배려와 안내로 진주 주변의 화개장터와 통영 한산섬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진주교대 장학재단을 설립한 정환기 선생(2016년에 별세)의 민족교육애를 향한 다양한 공헌, 진양호 주변에 세워진 ‘재일본진주친목회벚꽃단지’비와 진주 대곡초중고를 설립하며 진주 지역의 인프라 정비에 다대한 공헌을 보인 재일동포 사업가 하경완 씨(1999년에 별세)가 설립한 우약정 등을 보며 재일동포와 조국을 향한 마음을 재확인 하는 시간도 가졌다.

   
 

한편, 부산외대에서는 한국연구재단 용역을 함께 하며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박경수 교수님이 마침 다문화 특강을 배려해 주신 그 즈음에 부산광역시 문화상(인문과학분야) 수상자로 선정되셨기에 기쁜 마음으로 찾아뵙고, 다문화의 현실을 논할 수 있었기에 바쁜 와중에도 유익한 시간들로 일정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광안리 불꽃놀이 개최일 아침 비행기로 나리타를 향했지만, 이동 중에 찍었던 독특한 한국의 지역 문화 등을 담아서 주치의에게 SNS로 보내줬다. 이 친구는 한국의 콘서트 장을 방문할 때는 업무를 마친 뒤, 마지막 하네다발로 김포에 도착, 심야의 도심 호텔에 체크인 후 콘서트를 본 다음날 새벽 첫 비행기로 병원에 복귀하는, 그야말로 시간 싸움의 일정이기에 한국의 지방 문화를 보내면 힐링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그 친구도 김포공항서 출발한다며 공항 창밖의 일출 사진과 함께 한국어 답장을 보내온 것이 아닌가.

   
 

순간 적지 않게 놀랐지만, 그녀의 귀여운(?) 행동과 더불어 왠지 한일관계는 그녀가 보내준 태양처럼 희망적이라는 기분이 들었고, 국경이 낮아진 지금 자신이 좋아하면 편견이나 차이 같은 것은 얼마든지 초월할 수 있는 다문화공생사회의 가능성조차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친구들이 있기에 정치 외교 문제가 생겨도 든든한 신뢰기반으로 미래를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타산이나 이권으로 얽혀진 속되고 가벼운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문화의 건전한 매력을 아끼는 순수함이기에 그 힘은 더더욱 강한 불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의사들보다 업무가 많은 이 친구가 소중한 힐링 시간을 K-pop 아티스트 공연장에서 즐기며, 일본정부가 그토록 한반도 전쟁 분위기를 조성해도 그런 어리석은 언론플레이 같은 것을 간파하며 한국 이해자로 있어주는 이 힘이야 말로, 진정한 한일관계를 구축시켜주는 강력한 시민교류의 발판이 아닐까? 그렇기에 이러한 일본 시민의 애정과, 모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재일동포의 기억을 소중히 하며, 결코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편협한 국가주의 사고에 젖는 배타성보다 세계적 문화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직하고 성실하고 참신한 문화사회를 지향하는 자세를 모두가 실천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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