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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징비록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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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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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 / 논설실장

트럼프 안보 순방 앞두고 유성룡·대통령 화상 대담
국론분열 부를 再造山河 접고 국난에 한마음으로 대처 당부

   
 

전대미문의 화상 대담이 청와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담한 인물은 410년 전 세상을 떠난 서애 유성룡 선생이었다. 세계 최초로 이승과 저승 간의 화상 교신이 이뤄진 것이다.

저승과의 역사적 교신은 한국 과학자들이 영혼과 교신하는 장치를 극비리에 개발한 덕분이었다. 정부는 제1호 화상 통화자를 누구로 할지 공론에 부쳤다. 국가 안보위기 여파로 임진왜란의 국난에서 나라를 지킨 서애 선생이 압도적인 표차로 선정됐다.

드디어 청와대 영빈관의 대형 스크린에 그분이 등장했다. TV를 통해 숨죽여 지켜보던 국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문 대통령이 먼저 예를 표했다. “북한의 도발로 나라의 내일을 가늠하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서애 선생님께서 지혜를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서애가 말했다.

“일전에 바쁘신 국사 중에도 저의 누옥을 찾으셨더군요.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던 터에 이렇게 초대까지 해주시니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서애 생가가 있는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방명록에 “재조산하(再造山河)와 징비(懲毖)의 정신을 되새깁니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나라를 바꾼다’는 뜻의 재조산하는 이순신 장군이 서애에게 올린 글이다. 대통령이 적폐청산을 통한 국가 개조를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징비 정신은 ‘지난 잘못을 반성해 후환이 없도록 대비하고 삼간다’는 서애의 우국충정을 가리킨다.

“한 말씀을 드리지요. 나라를 바로 세우는 재조산하보다 나라를 보존하는 일이 더 화급합니다. 지금은 비와 바람이 세차게 부는 위난의 시기입니다. 그럴 때는 모두가 힘을 합쳐 비바람을 막아야 해요. 누가 집을 잘못 수리했느니 따지다가는 큰 화를 부를 수 있어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라를 망친 자들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항변에 서애가 입을 열었다. “폐단을 내버려두자는 뜻이 아니에요. 모든 일엔 선후가 있는 법이지요. 국난 앞에서는 부지깽이도 힘을 보태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갈라 싸우면 나라가 위험해요. 임진왜란도 동서 당쟁으로 외적에 대처하지 못한 잘못이 크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국론을 모으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요?” 대통령의 물음에 서애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답했다. “무엇보다 대탕평 인사를 해야 합니다. 코드인사란 소리가 나오면 국민 통합은 멀어집니다. 일찍이 세종께서도 조선 개국에 저항했던 사람들까지 포용하는 대탕평을 펼친 덕분에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소. 천하를 제패한 제환공은 집무실 밖에 항상 횃불을 켜놓고 널리 인재를 구했지요. 대통령께선 촛불을 귀히 여기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 밝은 빛은 피아를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동량을 찾는 일에 써야 합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고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했던 취임사의 초심을 잊지 마세요.”

대통령을 대하는 서애 선생의 예의는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지만 말에는 서릿발 같은 위엄이 있었다. “일국의 군주는 태양이 되어야 하오. 태양은 그늘을 밀어내지 않습니다. 모두를 포용해야 모두의 대통령이 될 수 있어요.”

“사흘 후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문한다지요?” 천상의 서애는 지상의 일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우방국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국민의 자세입니다. ‘나라는 자신이 먼저 해친 뒤에야 남이 해친다’는 맹자의 말씀을 부디 유념하기 바라오.” 국토가 두 동강 난 상태에서 그 절반의 남쪽이 보혁으로 쪼개진 현실을 질타하는 경책이었다. 두 시간의 화상 대담이 끝나자 서애는 표표히 저승으로 떠나갔다.

임란이 끝난 뒤 서애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징비록을 썼다. 다시는 백성들이 전란의 참화를 겪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함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서애 선생이 그토록 우려했던 국론분열과 안보불감증으로 전란의 화근을 재촉하고 있지 않는가. 훗날 대한민국은 어떤 징비록을 후세에 남길 것인가.

※ 이 글은 필자가 가상적인 대화를 임의 설정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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