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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은 어떻게 "힘"을 합쳐야 할까?
정음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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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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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성/중앙민족대학 교수

   
 

20세기 초에 미국을 방문했던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미국인들의 생활 곳곳에 “교파”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치과에서 그는 환자가 의사가 소속된 교파를 확인한 후 마음 놓고 치료받는 장면을 목격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그 환자에게 무엇 때문에 의사의 교파를 확인했느냐고 물어보았다. 환자는 “그 교파에 속한 사람들은 도덕적 수양이 높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즉 그 당시 미국에 있어 교파는 단순한 신앙의 공동체가 아니라 상호 신뢰의 공동체로, 그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의 장(場)이었던 것이다. 베버는 당시 미국의 큰 기업가들의 대부분이 “침례회”회원임을 확인하면서, 이 교파의 높은 도덕적 수준을 전제로 회원들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 교파 회원이 되는 순간 사회적 신뢰도가 증명되어 타인들과의 협력이 용이하다는 점을 발견한다. 이것으로 베버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의 형성이 기업, 경제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게 된다.

또 다른 예로, 유태인들은 내부의 단결력이 높기로 소문이 나있다. 민족내의 끈끈한 협업과 협력을 기초로, 그들은 2000여 년 동안 나라도 없이 사처로 헤매고 다녔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세계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합작의 기초를 다져 왔을까? 그것은 바로 유태인문화에 율령(律令)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태인들처럼 반드시 지키야 할 율령이 많은 민족도 드물 것이다. 가령, “갚을 능력이 없이 빚을 내서는 안 된다”, “세금을 내지 않은 상품을 매매해서는 안 된다”, “당지의 법과 어긋나는 초과이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등과 같이 생활 곳곳에 지켜야 할 원칙들이 숨어있으며, 유태인이라면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러한 원칙들이 확립되어있기 때문에, 유태인들끼리는 돈을 꿔주든 투자를 하든 사기당할 걱정이 없다.

해외의 화교들도 결집력이 높기로 소문이 나있다. 따라서 그들도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결집력의 원천 또한 무엇일가? 그 답은 바로 종족(宗族)조직에 있다. 북방의 한족들과 달리 남방의 한족들은 종족문화가 발달되어있어, 그들은 씨족을 단위로 사당(祠堂)을 세우고, 종가를 중심으로 하여 혈연적 관계를 유지, 확장시켜나간다. 근대에 해외로 흘러나간 화교들의 경우만 봐도, 외국에서 돈만 벌면, 고향으로 돌아와서 사당부터 수건 한다. 따라서 그들은 유대감이 끈끈한 방대한 친족집단을 형성해갈 수 있었다. 가령, “세계허씨총연합회”와 같은 종족 조직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세계적인 친족회의를 개최하여 내부적 결속을 다진다. 혈연을 매개로 뭉친 집단이기 때문에 회원들은 다 친척이 되는 셈이며, 따라서 내부에서 사기를 하거나 하면 아예 사회관계에서 매장된다. 따라서 친족내부에서 다양한 협력이 용이해진다.

상호간에 신뢰 형성이 집단내의 “힘”의 결집에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당대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아예 이를 “사회적자본”으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돈”만 자본인 것이 아니라,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도 자본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경제적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얘기한 사례들이 바로 “사회적 자본”이 어떻게 “경제적 자본”으로 전환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족은 어떠한가? 조선족의 문화 모체는 기본적으로 상업문명이 결여된 농경문화이다. 게다가 근대에 일제의 침략을 겪으면서 파산된 상황에서 국제적 이주를 경험하다보니 종족(宗族)관계도 거의 단절되다 시피 하였다. 파산된 빈농집단이 국제이주를 겪으면서 파란만장한 역사적 과정을 거쳤고, 그 와중에서 혈연과 계층을 초월한 “공동체”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삶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한 공동체였다. 힘들 때 위로해주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며 이민생활의 고단함을 공동체의 구성을 통하여 해소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족의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위로의 공동체”, “정의 공동체”, “놀이의 공동체”의 성격이 강했다. 삶이 고단하고 각박하니 서로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고, 이러한 아픔을 나누는 과정에서 “정”이 생겨나고, 그것들을 유지시켜주는 수단으로 “놀이의 문화”가 필요했다. 이러한 조선족공동체는 해방 후에 “마을”이라는 안정된 정착지를 찾으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조선족 마을은 바로 “위로의 단위”, “정의 단위”, “놀이의 단위”였다.

공동체생활에서 “정”이 강조되다보니, “계산”, “이익”, “계약”, “신뢰” 등과 같은 도구적 합리성이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되기 십상이었다. 가령, 조선족마을에서는 “이익만 따지고”, “계산적이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나쁜 사람의 전형으로 되기 일쑤였고, 반대로 인심이 후하여 다른 사람과 옴니암니 따지지 않는 사람이 좋은 사람의 전형이었다. 따라서 시장경제에 필요한 도구적 합리성을 발전시킬 수 없었다.

오늘날 조선족은 비록 도시화되어 대부분이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그 “공동체문화”의 습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조선족이 모여살고 있는 도시들마다 각종 “협회”가 설립되어 “공동체를 재구성”하고 있지만, 이러한 공동체들은 기본적으로 합작을 기초로 “힘”을 키우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보다는 여전히 “정”을 나누는데 치중 되어있다. 가령, “기업가협회”의 활동들을 보면, 협회를 통하여 유기적인 경제적 합작이 이루어지기보다는, 기업인들이 돈을 모아 공익성 활동과 문화 활동에 열중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가협회”는 “힘을 결집하는 사회적자본의 장”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공동체를 도시에서 부활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우리는 아직 “사회적 자본”을 “경제적 자본”으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믿을 수 있는 사회적 신뢰”로 되어 “힘”을 결집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지는 못한다. 조선족은 “정”과 “아픔”은 같이 나눌 수 있어도, “힘”과 “이익”은 같이 나누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공동체생활에서 우리는 “정”을 나누는데에만 습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젠 세상도 변했고, 우리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삶의 환경이 바뀐 것에 비하여, 우리의 가치관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다. 조선족의 미래는 물론, 우리 개개인의 미래에 있어서도 어떻게 신뢰를 기초로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고, 이를 “경제적 자본”으로 전환하는가에 승패가 달렸다고 볼 수 있다. 날로 치열해지는 시장경쟁 속에서 특별한 묘기가 없는 한 영세한 업소는 설자리가 없다. 한 사람의 힘이 부족하니 열사람, 백사람의 힘을 합치여 일단 덩치를 키워야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족공동체는 기존의 “정의 공동체”에서 “합작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또한 이러한 진화를 촉진시키는 것이 민족을 사랑하는 이 시대 조선족 지성인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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