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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1인 시대, 그 앞날은…
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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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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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 논설위원

   
 

“…천하대세(天下大勢)란 분열된 지 오래면 반드시 통일되고, 통일된 지 오래면 또 다시 분열되는 법이라…”

중국적 멘탈리티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까. 그 삼국지 연의(演義)의 첫 문장이다. 역사의 흐름을 순환적 관점에서 보고 있다.

“중국에서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경향이다.” 싱크 탱크 지오폴리티컬 퓨처의 지적이다. 개방적인 경제정책을 취한다. 부(富)가 창출된다. 그 부가 그런데 그렇다. 해안지역에만 집중된다. 내륙의 농촌지역은 계속 고질적인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이는 결국 지역 간의 심각한 경제적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자칫 내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국가통합을 위해 중앙권력은 개입의 필요성을 강력히 느낀다.

서방에의 문호개방 이후 중국에서 되풀이 되어온 현상이다.

1949년 마오쩌둥의 내전 승리도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중국의 해안지역에는 부가 몰렸다. 반면 중국인구의 절대다수가 몰려 있던 내륙지방은 빈곤에 허덕였다. 이 심각한 지역적 편차는 결국 내전을 불러왔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군은 빈곤에 허덕이는 내륙지역의 농민 편에 섰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베이징에 입성하자마자 마오쩌둥은 사유재산을 금지시켰다. 극심한 빈부격차를 불러온 경제구조 타파에 나선 것이다. 1인 독재통치강화를 통해.

극도의 공포통치 가운데 그런대로 사회적 안정은 이루어졌다. ‘가난하지만 하나가 된 중국’이 공산당 집권 1기,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이다.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과 함께 정책이 바뀌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이 그것이다. 이후 30여년. 중국은 ‘경제적 기적’을 이룩했다. 정부는 가급적 간섭을 줄였다. 그 결과 서방세계와 교역통로가 열려 있는 해안지역은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부가 쌓이면서 군사, 경제적 엘리트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익추구에 여념이 없었다. 뭐랄까. 자신만의 절대지(fiedom)를 구축해 가고 있다고 할까. 그 상황에서 중앙권력은 점차 통제력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반면 내륙지역은 여전히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 되고 있는 것이다. 분노가 쌓인다. 그 분노는 점차 비등점을 향해 나가고 있다.

덩샤오핑 이후, 그러니까 공산당 통치 2기의 중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맞이한 게 공산당 통치 3기다.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대표회가 열린 2017년 10월18일이 그 시작으로 이 시점에서 새삼 우려되고 있는 것이 중국은 또 다시 역사의 되풀이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은 국가주석에서 이제 시황제(習皇帝)로 등극했다.” 공산당 19차 전국대표회의 개막과 함께 나온 말이다. 본격적인 시진핑 1인 독재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를 가능케 했나. ‘비상시(非常時)에는 비상인(非常人)이 있어 비상한 공을 세운다’- 다른 말이 아니다. 일부 당과 정과 군의 간부들의 이익독점의 폐해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지역 간의 경제적 불균형도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이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독재 권력이다. 비상대권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 정황에서 시진핑의 독주가 이루어졌다. 부패척결이란 이름하에 대대적 숙청이 이루어진 것. 그러면서 권력은 시진핑 1인에게 집중됐다. 공산당 19차 전국대표회의는 그 시진핑에게 날개를 달아준 거대한 ‘정치 쇼’인 셈이다.

공산당 통치 3기, 다시 말해 시진핑 1인 체제는 그러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역시 ‘역사의 되풀이’에서 그 답은 찾아질 것 같다. 마오쩌둥 시대, 혹은 스탈린 통치 소련과 흡사할 것이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라는 덩샤오핑 이후 전통이 된 시스템이 무너졌다. 그러니까 순조로운 권력승계의 메커니즘도 없어진 것이다. 어떤 결과가 올까. 모든 권한은 물론, 책임도 1인자에게 집중돼 있다. 이 경우 군사나, 정치 쿠데타 가능성은 오히려 더 높아진다.

권력도 이 사실을 잘 안다. 때문에 과거 마오쩌둥이나, 스탈린 시대 소련처럼 정치적 탄압은 더 심해진다는 거다.

조지 워싱턴대학의 데이빗 샴보 교수도 이 점을 지적, 시진핑 시대에 중국의 정치체제는 조직과 시스템이 아닌 전제군주 형 지도자에게 의존하는 체제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 시진핑 시대의 해외정책은 더욱 호전적 형태를 보일 것이다.” 중국문제 전문가 고든 챙의 말이다.

시진핑이 지난 5년간 특히 심혈을 기울여 온 것은 군부의 대대적 숙청이다. 중국인민해방군(PLA) 내의 소장파 지휘관들이 시진핑의 새로운 정치적 동지로 이들의 전면부상과 함께 해외정책에서 중화민족주의 색채는 더욱 짙어진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그렇지 않아도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중국몽(中國夢)을 외쳐 왔다. 다른 말이 아니다. 중국은 강력한 패권국가로서 위상을 드날릴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는 서방에 대한 대안으로 중국모델을 제시할 때가 됐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중국모델을 홍콩대학의 윌리 람은 이렇게 풀이했다. ‘힘이 곧 정의를 만든다’는 식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대표회가 끝나는 오는 25일 이후 시진핑 체제의 정책노선은 지난 5년간의 흐름의 연속선상 있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다 선명한 중화민족주의 깃발아래 국내적으로는 더욱 극심한 탄압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그러면. “현대적 제도 부재상황에서 현대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은 망상이 아닐까.” 역사학자 아서 왈드론의 말이다. 오직 시진핑 1인을 위해 엄숙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국공산당 전당대회. 그 광경이 어쩐지 환영(幻影)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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