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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의 아픔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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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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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순 / 독자·샌타클라리타

나는 요즈음 소중한 나의 조국 생각에 가슴이 조여드는 아픔이 있다. 일제 강점기 말엽부터 5·16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의 우리 동포가 겪는 모든 고락에 동참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미국에서 40년도 넘게 살아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요즘도 나의 조국을 생각하면서 밤잠을 설치곤 한다.

어느 날 나의 고등학교 후배인 H 교수가 방문했다. 나이 차이는 조금 있지만 같은 학교에서 형성된 인격과 풍기는 매너 때문에 금방 친근감이 생겨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10살에 38선을 넘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13살 때 강을 건너 38선을 넘던 현장에 가 있는 것 같아 과거의 역사를 뒤로 거슬러 38선을 넘던 무리 속에 한참 머물러 있었다.

H 후배가 10살 때 가족들과 함께 38선을 넘다가 식구들을 잃어 당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한 고마운 젊은이가 함께해 주면서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하는 기로에서 길을 정하고 들어섰을 때 물에 흠뻑 젖은 채 아기를 업고 걸어가는 엄마를 기적적으로 만났다고 한다. 만일 그때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면 현재의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정말 아슬아슬한 이야기인 동시의 민족의 아픔이다. 이뿐이겠는가. 우리 민족이 겪은 38선의 숱한 슬픈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데 이 슬픈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요즈음 북한의 핵 실험으로 자주 등장하는 '함북 길주'는 어릴 때 잠깐 살았던 곳인데 요즈음 내 마음이 그곳에 가 있곤 한다. 소박한 동네의 모습과 일본 사람이 하오리를 입고 자기 집 문 앞에 뻗치고 서 있던 모습만은 어제일 같이 떠오른다.

얼마 전 대한민국 대통령과 러시아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바로 옆 도시인 북한 끝자락에 있는 '서수라'라는 곳은 내가 4, 5세 때 자라던 곳이기에 나의 생각이 온통 그 옛날에 가 있게 되었다. 그때 일본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 "미나 미나 고로세 짱꼴라"(다 다 죽여라 중국 놈)라는 노래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구나, 이것이 바로 세뇌 교육이 되었기에 그 어린 나이에 중국인을 멸시하지 않았던가.

추운 겨울 눈이 내릴 때면 이웃집을 얼음 터널 길로 가야 했던 것도 설레는 추억이다. 아빠를 따라 언니와 함께 해당화 만발한 사잇길로 조개잡이 갔던 넓고 시원한 바다는 아직도 그대로 있겠지! 잡은 조개를 담은 바구니는 언니가 머리에 이고 아버지는 나를 목말 태워 해당화 언덕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던 과거의 행복이 나를 오히려 아프게 하는구나,

이산가족의 아픔도 38선의 아픔이다. 그렇다! 아름다운 나의 조국의 38선은 허리가 잘린 조국의 슬픔이요 지금까지 계속되는 아픔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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