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욱 / 정치부장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체제 보장이다. 북한은 핵능력을 고도화해서 핵보유국 지위를 갖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를 위해 핵실험을 5번 감행했고, 운반수단 확보를 위해 틈나는 대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지금까지의 패턴은 반복적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에 국제사회는 제재를 가하고, 북한은 아랑곳없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고, 국제사회는 다시 제재하고…. 도발에는 ‘역대 최강의’ 제재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국제사회는 지금 북한에 대한 또 한번의 제재를 논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 영변핵시설도 가동 중이다.

북한은 ‘그동안’ 협상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핵보유 자체가 목표다 보니 그 길로 직진했다.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했다. 개헌 없이는 되돌릴 수도 없다. 인민들은 힘들어하나 체제는 견고하다. 나라 밖에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오렌지 혁명’ ‘아랍의 봄’이 일어났지만 북한은 까딱없었다.

한·미는 지난 9년간 북한을 내버려뒀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뜻이 없으니 대화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이 안되니 눈앞의 위기로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의 한반도 정책을 ‘실패한 외교’로 규정했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상황만 악화시켰다고 판단한다.

한·미 새 정부가 북핵 해법을 얘기할 때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 이 미사일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 부르건, ‘대륙간 사거리 탄도미사일’이라 부르건, 마지막 트랙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북한의 목표, 국제사회의 우려가 현실화하기까지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군사적 압박 카드를 거론하는 이가 있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옵션, 즉 무력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위적 정권교체를 추구하지도 않겠다고 했다. 북한에 가장 위협적인 카드가 버려졌다.

중국을 통한 압박을 얘기한다. 한·미 정상회담도, 한·미·일 정상회담도 중국의 역할을 강하게 촉구했다. 말로만 하지 않고 공동성명에도 담았다. 실상 국제사회의 경제적 제재·압박은 북한을 옥죄기는 했어도 체제의 존립 기반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중국을 바라본다. 북한의 특수관계인 중국이 움직이면 북한도 빗장을 풀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중국 외에는 변변한 무역국도 없으니, 특히 중국이 북한으로 보내는 송유관만 막으면 ‘게임 끝’이라고 본다. 중국의 대응은 달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이상의 무엇을 추진하지 않았다. 그러니 미국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제재하겠다고 나섰다. 이걸로 중국이 미국의 기대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솔직히 회의적이다.

도발을 계속하는 북한을 가만히 둘 수도, 손 놓을 수도 없다. 압박과 제재가 공론화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북한과 대화하지 않고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도 한·미는 안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 단계적 접근법을 제시한 배경이다. 북한이 핵을 동결하면 한·미의 요구인 비핵화와 북한의 관심사인 종전 협정, 체제 보장, 북·미관계 정상화를 패키지로 다루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주목한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한국의 역할’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냈다. 이어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가 선순환하고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한반도 평화 구상(베를린 구상)’으로 밝혔다. 지금까지 성공한 적 없는 길, “담대한 여정”의 첫발을 뗐다지만 대화의 입구까지 가는 길조차 험난하다. 우리 기대대로 대화 테이블로 나오라고 해서 나올 북한이 아님은 익히 봐 온 대로다.

북한이 ‘최대의 압박(제재)’에 ‘최대의 억지(도발)’로 맞서는 형국이지만 간접적으로 대화를 얘기한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축소 또는 중단이다. 계춘영 주인도 북한대사가 거론한 것인데, 이는 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제시한 방안이다. 중국의 아이디어인 ‘쌍중단(북한의 핵 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미국은 핵개발과 연합군사훈련이 맞교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한반도 인근 해역이 아니라, 미국령 어느 곳에서 훈련하는 것은 어떠냐는 제안도 나온다.

‘베를린 구상’만 봐선 ‘제재와 대화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지, 비책은 보이지 않는다. 시방서만으로 집을 지을 수 없듯, ‘대북 로드맵’이 북핵 문제 해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담대한 여정’에는 ‘담대한 협상’이 있어야 한다. 정부의 창의적 조치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