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범 / 논설위원

한국의 첫 크리스마스는, 갑신정변 때 중상을 입은 명성황후 조카 민영익을 살려 위상이 치솟은 선교사 겸 의사 호러스 알렌이 기념한 1884년일 가능성이 높다. 그 후 명성황후는 선교사 언더우드에게 기원과 의미에 대해 물었고, 그는 왕실용 트리를 헌상했다. 이어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 등 기독교 학교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크리스마스는 검증된 날이 아니다. 로마 건국 754년이 기원이며 A.D.(그리스도의 해)로 따져 2016년째지만 실제 3∼7년 늦다고 알려져 있다. 12월 25일도 마찬가지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1세가 4세기 중반 점령지 이집트의 태양신 축제를 예수 탄생일과 같이 지내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서부 전선 플뢰르 벌판. 영국과 독일은 참호 학살전에서 수습 못한 수많은 시신을 앞두고 대치했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독일군 진영에서 갑자기 울려 퍼진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럴에 영국군은 환호했다. 시신 수습을 위한 대화가 시작됐고 선물 교환, 크리스마스트리 제작, 축구 경기가 이어졌다. 전무후무한 전투 부대 간의 ‘크리스마스 휴전’이었다. 축구는 3 대 2, ‘펠레 스코어’로 독일이 이겼다. 영국 측은 마지막 골이 오프사이드라고 주장했다. 양측 사령관의 불호령으로 반짝 휴전이 끝난 이후 3년 10개월간 900만 명 전사, 2000만 명 이상 부상. 안타까운 크리스마스였다.

코일에 자석을 대면 전류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처음으로 인공 전기를 만들어낸 마이클 패러데이는 무학(無學)이었다. 과학자 조수를 하며 수백, 수천, 수만 번의 같은 실험을 반복해 전기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 공로로 영국 왕립연구소 회장과 기사 작위, 뉴턴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힐 권리 등을 제안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대신 그가 택한 것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6차례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이었다. 값진 선물이었다.

올 크리스마스-실(seal)이 대박이다. 온라인 판매만 지난해의 10배(1만여 시트)를 넘었다. 내년 2월까지 최고치를 갈아 치울 전망이다. 이유가 더 의미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국정 교과서 논란에 대비되는, 김구·안중근·유관순 같은 나라를 구한 독립운동가 10명이 실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란다. ‘이게 나라냐’는 자조에 훈훈한 위로가 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