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 한국외국어대 교수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의 진용이 갖춰지면서 안팎의 우려들이 나오고 있다. 13일 초대 국무장관에 ‘푸틴의 친구’로 불리는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가 지명된 이후 나온 ‘친러반중’ 외교 우려도 그중 하나다.

그러잖아도 미·중 간에는 트럼프 당선 이후 만만찮은 기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12일, 지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당시 약속한 올 연말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 인정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거부하고 있다며 양자를 WTO에 제소했다. 앞서, 지난달 중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앞마당인 남미 3개국 순방과 아태경제협력체(APEC) 총회를 통해 자유무역 수호 의지를 천명하면서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배격하고 나섰다. 이에 트럼프는 지난 2일 대만과 단교 37년 만에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전화 통화를 했고, 11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는 ‘하나의 중국’ 정책도 북핵(北核) 등 다른 문제와 연계해 처리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중(對中) 강경 메시지를 던졌다.

트럼프 당선자가 지난 대선 기간에는 중국에 대해 불공정 무역과 환율 조작 문제 등 주로 경제 문제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강조했으나, 이제는 정치외교 분야로 대중 압박 전략을 확대하는 양상이다. 특히,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중국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데도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면서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이 극도로 민감해 하는 대만 문제를 건드리고,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 등도 언급해 향후 다각도로 대중 압박이 전개될 것임을 시사했다.

일단 현재까지 트럼프가 중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강경하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에 협조하지 않으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미국은 주도적 국제질서를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그려놓은 그림 안으로 중국이 들어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대만 문제를 새로운 카드로 꺼냈고 ‘전략적 인내’와 더불어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면서 어쩌면 방치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왔던 북핵 문제도 트럼프가 처음으로 공식 언급한 만큼 우리로서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트럼프의 대중 압박 전략이 절대 즉흥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이미 트럼프의 외교안보 라인은 상당히 강성으로 구성됐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의 통화도 몇 달 전부터 계획했으며, 북핵 문제도 김정은을 못 만날 이유가 없다며 정책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압박과 인내’ 정책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트럼프는 군사적 제거 행동이나 협상 카드를 만질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미·중 양국의 북핵에 관한 타협 공간도 분명히 있다.

이렇게 미국의 대북 정책 전환이 가시화하는 시점에 우리는 트럼프 측과 아직도 적절한 연계점을 갖고 있지 못한 듯하다. 한·중 관계는 사드(THAAD) 배치 발표 이후 경색 국면으로 치닫고 있고, 미·중 양국에 북핵은 일차적인 직접적 위협 요소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와는 다른 입장에서 처리 방향이 설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민족 생존이 걸린 사활의 문제다. 따라서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계속 미·중과 소통 노력을 강화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국내 문제가 복잡하다고 ‘식물 외교’가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