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휘탁/ 한경대 교양학부 교수


단군신화가 백두산을 모태로 하고 부여와 고구려가 백두산 기슭에서 둥지를 틀었듯이,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발상지이자 우리 역사의 발원지이다. 그래서 애국가의 첫마디는 백두산으로 시작한다. 이제 백두산은 우리의 역사나 마음속에서 떼어낼 수가 없게 됐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는 ‘동북공정’ 못지않게 ‘백두산’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가령 1998년 6월 중국정부는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길림성정부에 대해 ‘백두산 천지’를 ‘장백산(長白山) 천지’로 바꾸고 공개 출판된 지도에도 그렇게 바뀐 명칭을 기재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1999년 1월 출판된 ‘중국지도집’ 제2판에는 ‘백두산 천지’가 ‘장백산 천지’로 바뀌어 기재됐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근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단순히 ‘장백산’이 아닌, ‘중국 장백산’으로 부르고 있다.

‘중국 장백산’이라는 명칭에는 ‘장백산은 중국의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이 함의는 “중국의 역대 왕조가 장백산을 관할해왔으므로 장백산문화 역시 중화(中華) 문화권에 속한다”는 ‘장백산문화론’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백두산은 중국 것”이라는 논리다. 중국의 동북지역에서는 ‘장백산문화연구회’를 잇달아 조직해서 ‘장백산문화론’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더욱이 연변조선족자치주가 행사하던 백두산 관할권을 길림성 정부로 이관시키고 관광수입의 증진과 각종 산업의 육성을 위해 백두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백두산을 세계자연유산 및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하기 위해 다각도의 준비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중국은 왜 백두산에 집착하는 걸까? 그 이유는, ‘동북공정’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백두산의 경제적·전략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동북지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동북진흥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은, 풍부한 관광자원과 인삼, 광천수, 약용자원을 갖고 있는 백두산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백두산을 세계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한다면, 중국은 자연스럽게 백두산에 대한 역사문화적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고 백두산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각시켜 많은 경제적 이득도 거둘 수 있다.

더 나아가 ‘장백산문화론’을 통해 ‘백두산이 중국 것’임을 대내외에 각인시켜나갈 경우, 간도문제를 비롯해 “백두산은 한민족의 발원지이자 한국사의 발상지”라는 남북한의 논리에 대처하는 동시에, 백두산을 매개로 한 한민족의 만주에 대한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만주의 고대사를 중국사로 규정함으로써 역사를 매개로 한 한민족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하지만, “백두산은 한민족의 발상지”라는 논리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 완전한 차단은 곤란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백두산은 우리의 자연문화유산인가? 중국의 자연문화유산인가? ‘장백산’ 명칭이 사료에 처음 나온 시기는 요(遼)나라 성종 30년(1012)이고, ‘백두산’ 명칭은 장백산 명칭보다 300여 년 앞선 삼국통일 직후이다. 명칭으로만 보면 백두산이 장백산보다 훨씬 먼저 사료에 나오는 셈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고려 때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나 태조 왕건의 조상에 얽힌 백두산 설화 혹은 조선 때의 백두산 신화와 설화가 있었듯이, 중국의 거란족과 여진족도 백두산에 관한 신화와 전설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조선왕조가 백두산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냈던 것처럼, 여진족(후에 만주족)의 청조 역시 백두산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곤 했다. 우리 민족이 백두산을 민족의 발상지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만주족도 여전히 백두산을 민족의 발상지이자 성지로 인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백두산 지역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의 관할권 속에 있었지만, 그 후에는 요, 금, 청의 관할권에 속해 있었다. 현재는 백두산이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 걸쳐 있다. 이렇게 본다면, 백두산은 우리의 것도 중국의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백두산은 남북한과 중국 모두의 자연문화유산인 동시에 역사문화유산인 셈이다.

그런데 만일 남북한과 중국 어느 한쪽이 백두산에 대해 배타적인 귀속권을 주장한다면, 양쪽간의 갈등과 대립만을 초래해 피차간에 상처와 손실만을 가져다 줄 것이 뻔하다. 이것은 2007년 중국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의 백두산 세리머니를 둘러싸고 빚어졌던 한중 양국민의 갈등사례에서 이미 경험했다.

백두산문제의 해법은 외국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프랑스와 스페인은 양국 접경지역인 피레네산맥의 몽뻬르뒤산을 공동의 자연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고 공동 관리하고 있다. 알프스산맥의 몽블랑산도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가 공동 관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만일 백두산도 남북한과 중국이 공동 관리한다면, 백두산은 남북한과 중국 상호간의 우호와 협력, 공동번영을 위한 시금석으로 작용할 수 있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공동체의 실현을 앞당겨주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이제 백두산은 대립과 갈등의 싸움터가 아니라 화해, 협력, 번영의 상징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