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용 / 기자

백화점에 진열된 삼성전자 로고가 찍힌 가전제품들과 도로를 달리는 현대 자동차를 보면서 뿌듯했던 경험은 미국에서 80,90년대를 보낸 한인들이라면 대부분 갖고 있는 공통된 추억이다.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브랜드로 성장한 ‘SAMSUNG’과 ’HYUNDAI’는 세계속에 한국 경제의 극적인 성장과 우수성을 알리는 ‘영웅’과도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제, 영웅들이 흔들린다.
삼성의 최신기술이 집약된 결정체인 ‘갤럭시 노트7’은 불에 타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이미지로 근래 미국내 뉴스 프로그램과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핸드폰 발화 사태에 대처한 사상초유의 ‘전세계 리콜’이라는 통 큰 대책으로 애써 쌓아왔던 브랜드 이미지 타격우려를 잠재웠다. 그러나 안전하리라 여겨졌던 교환제품들 마저 세계 곳곳에서 폭발하며 논란이 되자 결국 수주만에 다시 ‘갤럭시노트7 생산 및 판매 중단‘이라는 사실상 단종 조치를 발표했다.

라이벌 회사인 ‘애플’이 1년에 한차례 신형 아이폰을 내놓는데 반해 삼성전자는 주력 스마트폰을 ‘갤럭시 노트’와 ‘갤럭시’로 다양화하고, 일년에 한번씩 번갈아가며 신제품을 발표하는 방법으로 애플의 아성을 추격해 왔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이폰의 ‘카피캣’이라는 조롱과 오명 속에서 2010년 첫 출시된 갤럭시 S는 7년여가 지난 지금, 하드웨어적 부문에서는 아이폰을 능가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스마트폰 제품군에서 유독 심한 따라잡기와 밀어붙이기 식의 제품개발 방식이 ‘브랜드 이미지’가 ‘기술’을 압도하는 현재의 세계기업 문화 속에서 지속적인 원칙이 되어왔다는 점이 작금의 사태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새겨들어야 한다. 삼성전자는 이번 사태를 값진 교훈으로 삼고 이미지 재고와 새로운 도약을 위해 다시 한 번 절치부심해야 한다.

현대 자동차 역시 2011년부터 3년간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한 소나타의 세타Ⅱ 엔진에서 결함이 발견돼 차량 소유자에게 수리비용 전액을 보상하기로 하면서 위기론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는 수출 부진으로 인한 판매 감소 등이 원인이 돼 2016년 상반기 영업이익이 3조1042억원으로 전년도 동기간에 비해 7% 줄었다. 판매대수도 2015년 상반기 241만5777대에서 239만3241대로 0.9% 하락했다.

현대차의 극적인 성장은 최악의 불경기를 겪으며 고전하던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구조조정을 펼친 시기를 기회로 비약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제는 이들 글로벌 메이커들이 체력을 회복하고 2014년부터 첨단기술과 디자인으로 무장한 신차들을 출시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토요다와 혼다를 위시한 일본차들의 돌풍이 무섭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는 되풀이되는 강성노조의 전면파업과 1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한 본사 건설을 위한 ‘땅투기’로 한국 소비자들마저 등을 돌리는 기업이미지 하락에 직면했다. 이에 더해 에어백 결함으로 국토교통부로부터 고발을 당하는 등 품질논란도 한창이다.

해외에서 한국 수출의 30%를 차지한다는 이들 기업의 위기를 지켜보는 동포들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소니가 몰락하는 과정과 거의 파산직전까지 갔던 디트로이트의 미국 자동차 산업의 흥망을 지켜봤던 이들은 삼성이나 현대의 위상이 수십년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버블경제의 몰락을 뚫고 다시 한 번 절치부심 노력하는 일본 기업들의 연구정신, 끝없는 혁신과 기술개발로 그 수준을 한없이 끌어올리는 미국의 수많은 첨단기술 기업들, 실용성을 무기로 더욱 다양한 상품들을 개발하는 유럽 기업들의 창조적인 기술력 앞에, 언제까지나 ‘한강의 기적’을 곱씹으며 ‘재벌 밀어주기’로 일관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경제정책과 기업들의 안일한 의식은 대한민국의 앞날을 풍전등화 같은 형태로 밀어넣고 있다.

한국을 최근 방문한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학생들의 장래희망이 공무원이고, 인생목표가 건물주인 나라인데, 희망이 있겠어?” 그 친구의 말마따나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통일만이 해답인가 씁쓸히 자문해 본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세계 최고의 평균지능 및 교육수준으로 무장한 자부심 넘치는 한국인들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영웅’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