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연 /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요즘 나라밖 동향이 심상치 않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자국우선을 외치는 후보가 많은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당당히 대통령 후보가 되어 미국 뿐 아니라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고, 유럽에서는 영국이 EU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브렉시트(Brexit)를 진행 중이다. 대국굴기와 도광양회를 외치며 무섭게 성장한 중국도 과거의 중화주의로 회귀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강대국들의 신고립주의는 우리에게 결코 반갑지 않은 일들이다. 최근 미국은 우리나라 철강제품에 대해 60% 이상의 터무니없는 고율 관세를 부가해 우리 수출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우리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이자 정치, 문화, 군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은 사드문제를 경제적, 문화적 제재로 확대해 우리 기업들이 중국시장에 발붙이는데 애를 먹고 있다. 과학계 입장에서는 비단 수출이나 관세 부과와 같은 경제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의 인적교류의 위축이 더욱 걱정되는 시점이다.

우리는 활발한 국제교역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10여년째 2만달러대 국민소득에 머물고 있는 현재의 답답한 상황을 돌파하고 3만달러, 4만달러의 국민소득을 달성해 명실상부한 선진국 그룹에 진입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 몇몇 국가들의 선례를 보면 대부분 자원부국으로 우리보다는 나은 형편이었음에도 결국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한 채 주저앉은 것을 보면 선진국 진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확실하다. 대한민국의 경우 불과 65년전 한국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산업 발전을 위한 자원조차 거의 없었지만 기적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쉼 없이 달려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에 다다른 우리로서는 강대국들의 신고립주의적 행태가 무척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각 분야에 남들보다 먼저 고부가가치 기술을 개발하여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가 그 좋은 예이다. 전원이 끊어지면 정보가 소실되나 속도가 빠르고 집적도가 우수한 디램 (DRAM) 메모리나, 전원이 없어도 정보가 그대로 저장되는 NAND 플래시 메모리 소자는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또한 휴대폰을 통해 개인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생성하고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공유하는 빅데이터 시대에 대응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정보와 데이터 수용을 위해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적 기업뿐만 아니라 네이버, 다음 과 같은 국내 포털기업들도 각자의 독자적인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데이터 센터의 가장 기본적인 장치는 플래시 메모리기반의 SSD (Solid State Device)로서 향후 시장규모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 기업들이 선점해야 할 분야다.

이미 확보하고 있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수한 기술을 남들보다 앞서서 보유하는 것이다. 또한 기술개발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우리나라가 메모리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 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를 턱 밑까지 추격해 온 중국과 비교해 봐도 국내 연구인력 규모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해외 한국인 과학자를 유치하는 신두뇌 유치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아울러 외국인 과학자를 초빙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 실적은 매우 미미하며 국내에 들어와 왔던 한인이나 외국인이 정착에 실패하여 수년 내에 다시 돌아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한 데 있을 수 있다. 외국에 정착해 활발한 연구개발 활동을 하고 있는 한인과학자들은 고국의 관심과 지원에 크게 고무되고 비록 몸은 먼 타국에 있지만 고국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강한 편이다.

매년 여름이면 유럽, 캐나다, 미국에 있는 한인과학자들과 국내 과학자들의 정기적 학술활동인 EKC(유럽), CKC(캐나다), UKC (미국)들이 개최되어 국내외 한인 과학자간 교류의 장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 이 중 미국 UKC의 경우 벌써 20여년째 개최되고 있다. 이 행사에 한국에서는 고위급 과학기술 정책담당자, 대학총장, 과학기술단체 기관장 등 많은 주요인사들이 참여하고 다양한 분야에 공동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이런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해외 한인과학자들을 보다 적극 활용하게 되면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도 해외 한인과학자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공간적, 시간적 제한이 큰 의미가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공간의 제약에 구애되지 않는 시대인 것이다. 해외 한인 과학자를 유치하는데에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 네트워크 자체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제 국내에 연구자들과 전 세계에서 뿌리 내리고 있는 모든 한인과학자의 역량을 모아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