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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복판에서 우리의 춤으로 평화를 노래하다”김희정 원코리아 이사장, 한국의 예술문화를 전파하며 나눔과 봉사로 지구촌 한인들 화합 도모
최유정 기자  |  ok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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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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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을 돌며 흩어져 사는 한인과 함께 ‘세계한인문화공동체’ 라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한국의 다양하고 우수한 문화자산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원코리아 김희정 이사장이다.

㈔원코리아는 외교부 인가(비영리법인 등록)를 받은 단체로, 지난 2013년 11월부터 미국, 일본, 중국 등을 중심으로 ‘평화ㆍ문화ㆍ나눔’이라는 슬로건으로 ‘One Korea Peace Festival’이라는 문화축제를 벌이고 있다.

소통과 치유, 화합을 바라며 다양성과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가 함께 참여할 수 있다. 홍익인간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특히 통일미래시대에 걸맞는 글로벌 차세대 인재 양성과 우리의 문화공연을 통해 자긍심을 심어준다는 취지로 여러나라에서 매년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광복70주년 기념사업으로 ‘오페라 뚜나바위 갈라쇼’와 ‘원코리아문화예술단’을 이끌고 애틀란타에서 퓨전국악연주로 미주 사회와 우리 동포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주었는데 올해도 대한민국 행정자치부 사업에 선정되어 문화행사로 “타무락, 원코리아 피스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원코리아는 대회장에 김덕룡이사장과 상임고문에 이기수 전 고려대학고 총장, 장세일 영주선비포럼 회장과 이창구 영주풍기인삼축제조직위원장이 단장과 추진위원장을 맡고 원코리아 미주위원회(회장 유인상)와 함께 오는 8월 27~28일 이틀간 미국 애틀랜타 인피니트 에너지 소극장에서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 평화 기원’을 주제로 ‘One Korea Peace Festival 2016 in USA’를 준비하고 있다.

재미동포 약 1천500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로, 경기도립무용단과 원코리아 관계자 등 약 60여명을 이끌고 가는 김희정 씨는 한국의 전통문화 소개와 더불어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감동의 무대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갖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이 행사가 남한이나 북한이 아닌 제3국에서 ‘문화와 나눔 봉사’를 통해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의 평화를 논의해 온 점에서 흔치않은 행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오는 8월 미국에서 대규모로 열리는 행사에서는 부대시설을 마련해 경북 영주시의 지역 특산품 등을 소개하며 해외 판로 개척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초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생활하며 해외에서 살고 있는 재외동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고 재일코리언의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때 알게 된 것이 공익재단법인 원코리아페스티벌 행사였다고 한다.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 입장에서 통일에 대한 비전을 호소하고 일본 땅에서조차 하나가 되지 못하고 반목과 갈등을 겪고 있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운동’이었던 원코리아 페스티벌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롭고 창조적인 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목표로 매년 가을 일본에서 열리고 있다. 1985년 제1회를 시작으로 30여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린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행사를 진행함에 있어서 일본 우익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고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세월을 헌신하며 노력했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과 본인의 뜻과 다르게 비쳐지는 일본에서의 NGO 활동과 끝없이 반목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재일동포들에 대해서도 조금 회의를 느꼈다.”고 쓸쓸히 말한다.

많이 지쳐있던 그는 잠시 일본에서의 모든 활동들을 멈추고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좀 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왔다.

재외동포 문학상 시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고 시단에 등단하기도 했고 재외동포재단에서 공모한 학위논문상에서 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동안 혼자 벌어 두 아이 키우랴, 운동하랴, 정신없이 살면서 쓰고 싶은 시도 못 쓰고 하고 싶었던 공부도 제대로 못했었던 세월들을 돌아보며 더 늦기 전에 자신 개인의 삶에도 충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행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이 일본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해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념과 갈등, 세대 간의 차이를 넘어선 다양한 예술 문화를 통해 흩어진 한국인의 화합을 도모하고, 우리 민족의 역량을 모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삶, 뭔가 따뜻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마음의 통일이 먼저 되어야

사실 그는 “따뜻한 나눔 운동, 멋진 문화운동, 아름다운 평화운동”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통일운동만이 아닌 평화문화운동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되고 화합하기를 바란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와 진정어린 사랑과 나눔으로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먼저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누가 할 것인지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통일은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각 분야의 교류협력과 상호신뢰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우선 우리들 마음의 통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남북 간의 불신을 타개할 수 있는 길로 우선 상대적으로 쉬운 문화, 경제교류부터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그 동안 우리 코리아의 화합을 위한 문화행사를 국내외에서 개최하는 등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

“이러한 운동을 통해서 남과 북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한민족 구성원들에게 통일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우리의 차세대와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한류문화와 전통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문화 공연을 통해서 더욱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 모두의 숙원 사업이며 세계사적 과제이기도 하지만 강대국들의 협조와 응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

원코리아와 나

“강대국뿐만 아니라 또한, 전 세계 구석구석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우리 재외동포들의 파워가 이럴 때일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제는 우리 코리언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문화적 DNA의 힘으로 무대를 세계로 넓혀서 인종ㆍ정치ㆍ종교적 벽을 뛰어넘고 홍익인간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나눔과 봉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뜻을 한국과 해외에서 살고 계신 지인들께 상의 했더니 많은 분들이 제 뜻에 동참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한국에 본부를 둔 ㈔원코리아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고 무대를 전 세계로 옮겨가며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그리 녹녹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뒤에서 헐뜯거나 사실도 아닌 억지 소문을 만들어내서 모함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기도 하다고 털어 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분단되어 있는 나라에서 ‘원코리아’라는 이름은 개인이나 작은 단체가 사용하기엔 너무 크고 무거운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몸에 맞지도 않는 너무 큰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누군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알맞은 단체 이름을 하나 지어주시면 좋겠네요. 인터넷에 한 번 공모를 해 볼까요?” 라며 씁쓸히 미소를 지었다.

또한, 한국에 본부를 둔 ㈔원코리아와 일본의 공익재단 법인 원코리아페스티벌은 전혀 다른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단체 이름이 비슷한 것도 있고 또 김이사장이 20여년간 일본의 원코리아페스티벌 행사를 도왔다는 이유로 일본과 한국의 조직을 혼동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본 것을 가져다가 한국에서 그대로 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따뜻한 나눔 운동, 멋진 문화운동, 아름다운 평화운동

서울에 계신 부모님 임종도 못 지키면서 나름대로 일본에서 열심히 살았건만 자신이 걸어 온 20여년의 길이 진정 최선의 길이었는지,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며 앞으로 미래에 대해서도 천천히 계획을 세워보려고 하고 있던 중, 우연한 기회에 지난해 말, 지진피해 복구작업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네팔에 다녀오게 되었다.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한 진앙지 주변 지역에는 여전히 지진피해를 입은 수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끔찍한 지진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삶을 잃어버린 아이들. 아직 부모님의 보호 속에서 자라야 할 나이의 아이들은 그날의 공포와 트라우마로 인하여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가족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625 전쟁이 터졌을 때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떨었을 우리 국민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다시는 그런 끔찍한 전쟁이 내 나라에서 일어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이든 재해든 그것은 인간으로서 무척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죠. “

급한데로 ‘의류지원사업’, ‘영양식 지원사업’을 하고 돌아왔는데 형편이 되는데로 계속해서 진행해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봉사활동을 끝내고 그냥 돌아오려던 일정을 바꾸어서 저는 자신과의 대화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며 진지하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혼자서 안나프르나 트래킹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험한 산을 오르는 동안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또 무엇이 하고 싶은걸까? ”정신없이 살아오면서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한번 되돌아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올랐습니다."

“높은 산 위에 올라 산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마치 현실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다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아득하지만 아스라이 길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모든 상황들이 바뀐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반 잔 정도 들어 있는 컵의 물을 보면서 벌써 물이 반이나 비었다고 할 수도 있고 아직 반이나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지금 저는 제 잔에 아직도 물이 반이나 남아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네팔 봉사를 통해서 작은 나눔이라도 베풀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해외동포들과 함께 힘을 모아 우리 국내의 소년소녀 가장 돕기뿐만 아니라 북한의 어린이들 돕는 일에도 동참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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