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메릴랜드 총국장

지난 16일 메릴랜드 컬럼비아에 있는 한인회관 앞에 안절부절하며 서 있는 부부가 있었다. DC에서 운영하는 가게를 일찍 닫고 이곳을 찾은 부부는 ‘아들 일인데 가게가 대수인가요’라고 말했다.

2년 전 4월 ‘오늘은 조금 늦을 것 같다’며 집을 나선 아들(구문회). 아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부모 곁으로 돌아왔다. 자식을 먼저 보낸 모든 부모의 마음처럼 이들 부부의 가슴은 메어지고, 삶은 절망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구원서 씨 부부의 이야기다.

사건 초기 힘겨운 시간 기댈 언덕이 없었다고 말했다. 언어적인 문제로 경찰과의 소통도 어렵고, 한인 커뮤니티와의 연결 고리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답답함의 연속, 그렇게 시간은 흘러 2년이 지났다. 아들을 죽인 범인은 오리무중이고,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철마다 아들 침대에 즐겨 입던 옷만 번갈아 놓고 이불로 살포시 덮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이날 한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볼티모어 시경 수사반장은 여전히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해결할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비록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일지라도 이들 부부와 참석 한인들에게는 또 다른 희망을 심어준 것이다.

지난해 볼티모어에서 살인 사건으로 숨진 이는 모두 344명이다. 거의 하루에 한명꼴이다. 이에 반해 경찰 수사 인력은 평상시 100여 명에서 폭동 이후 60여 명, 최근에는 39명까지 줄었다. 산술적으로 1명당 거의 10건의 살인 사건을 맡아야 하는 실정이다. 폭주하는 업무량을 생각할 때 증거도 없이 오래된 사건 파일을 계속 손에 잡고 있을 여력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비록 2년이 지났어도 미제 사건으로 넘기지 않고 계속 수사하겠다. 수사상황도 정기적으로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경찰의 상투적인 말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이번 만큼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부모가 도움을 요청하고, 언론이 사건을 소개하고, 한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경찰이 응답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건 해결 여부를 떠나 한인들의 ‘작은 관심’이 만들어낸 성과다.

한인 1세대들이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답답함의 연속이다. 그래서 단체를 만들고, 계를 만들고, 이런저런 다양한 모임을 통해 끈끈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경기 불황의 여파는 한인사회에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있다. 단체 활동은 축소되고 이웃을 돌아보기에는 현재 살아가는 내 삶도 버겁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통의 창구마저 SNS 등 소셜 미디어로 옮겨가면서 인간관계의 내밀함마져 사라지고 있다. 내가 필요한 부분만 요청해서 찾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주는 세상이다.

구문서 씨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아들 관련 사건을 2년 만에 처음으로 속시원하게 들었습니다. 자식 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줘서 고맙습니다. 한인 커뮤니티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앞으로 우리 부부가 먼저 나서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우리’라는 말에는 영어의 1인칭 ‘I’의 복수형 ‘We’를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서다. 바로 ‘공동체’의 의미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 특히 ‘우리’가 보여주는 아주 작은 관심은 때로는 누군가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엄청난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