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욱 /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지금 한국은 사드 문제로 대내외적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 있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고, 중국은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으며 남남 갈등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북핵 대처용이라는 사드 배치가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유는 무엇일까?

사드와 관련해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드가 북한의 핵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가? 둘째, 사드가 중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가?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미국에서 보는 견해는 대체로 이렇다. 사드가 북핵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결책은 아니다. 사드가 중국에 위협이라는 것은 과장된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사실은 미국도 중국도 다 알고 있다. 그럼 도대체 왜 이 난리란 말인가?

씨름에 비유하자면 미국과 중국 간의 샅바싸움 성격이 짙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아시아 지역 곳곳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센카쿠(댜오위다오), 남중국해 그리고 한반도가 그 주요 지역이다. 중국은 한국을 전통적인 한·미 동맹에서 좀 떼어놓고 싶은 반면 미국은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중국이 북한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북한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미·중 관계에 있어서 북한이 가진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북한 문제`가 커질수록 이해관계가 다른 미국과 중국은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고 사드 배치 논란과 같은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한반도가 미·중 관계의 신냉전 포스트가 안 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북한이 맘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보다 박근혜 대통령을 더 좋아할지 모르지만 북한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 중국이다. 한국이 4차 핵실험 이후 대북 압박에 앞장서면서 다른 나라들과의 공조를 강조하고 있지만 중국을 비롯해 각 나라마다 전략적 셈법이 달라 한계가 있다.

이제는 잊힌 정책이 되어버렸지만 박근혜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뢰 프로세스가 안 된다면 `실리 프로세스`라도 해야 한다.

어차피 남북 관계는 특수한 관계이고 북한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국가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해야 하는 운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설사 북한에 한 수 접어준다고 해도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미·중 간 전략적 불신이나 갈등을 감소시킬 수 있고 지금처럼 미·중 간의 선택을 강요받지 않아도 된다면 꼭 손해 보는 건 아니다. 어차피 북한과 신뢰를 쌓을 수 없다면 차라리 실리라도 택해야 한다.

북한을 압박하더라도 대화 프로세스는 재개해야 한다. 제재가 대북 정책의 중요한 수단이 될지언정 목적이 될 수는 없고 대화가 유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1990년대 말 미국의 대북정책의 중요한 기조가 되었던 `페리 프로세스`의 전제도 "우리가 원하는 북한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린 아직도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고위급 인사 중에서 그를 직접 만난 사람이 없다. 고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술주정뱅이에 여자나 밝히는 폭군 정도로 여겼다가 정상회담 후에는 전략적 사고를 가진 협상 파트너로 인정했다. 심지어 김정일 신드롬까지 가져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고모부까지 처형하는 철부지 폭군인지, 전략적 마인드가 있는 강단 있는 권위주의 리더인지 잘 모른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의 기본마저도 무시되고 있다.

국내에서 회자되고 있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즉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생각이다. 한국처럼 강대국 사이에 낀 지정학적 위치에다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안보와 경제는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북한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지금처럼 미·중 간 전략적 불신과 갈등은 지속될 것이고 한국은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를 수밖에 없다. 결국 남북 관계 개선 없이 `넥스트 코리아`는 기대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