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선 /연변대학 사회학과 부교수

통계에 의하면 2014년 6월말까지 한국에서 생활하고 취업해있는 중국조선족인구는 55만여명이고 그중 남성이 53%, 여성이 47%로 여성이 남성보다 약 3만명 적게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1992년 중한수교를 전후하여 시작된 조선족의 한국 이주역사 속에서 조선족여성들은 어떤 경험을 했으며 어떤 새로운 지식을 얻었을까? 국제이동을 경험한 조선족여성들의 경험과 지식이 현재 중국조선족 사회를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은 조선족여성들이 하나의 논리로 단일화 할수 없는 다층적이고 이질적이고 다양한 삶의 경험을 지닌 주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필자는 한국유학에서 “젠더(사회성별)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여성학 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연변대학 조선족여성학자들이 언제, 어떻게 “젠더”개념과 이론을 접하게 되고 “여성연구”와 “여성운동”연구를 시작하게 되였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1993년 하반기 연변대학에서는 여성학 바람이 힘차게 불고 있었다. 1993년 4월, 연변대학 정치학부 김동화교수는 한국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소 소장인 장필화교수와 박진숙연구원을 연변대학에서 개최하는 “동북아 조선민족문화의 계승과 발전”학술대회에 초청하였다. 이어서 이화여대와 연변대학 간의 교수, 연구원 교환프로그램에 따라 연변대학에 파견된 한국여성연구소 박혜란 연구원은 연변대학의 여성학강좌 개설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정치학, 역사학, 철학, 경제학, 문학 등 다양한 전공분야의 여성교수 10여명을 대상으로 매주 두세 번씩 여성학강의를 진행하고 친선을 도모했다. 박혜란연구원과의 교류를 통해 여성문제와 그 해결방안에 대해 가일층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 연변대학의 리복순, 량옥금, 채미화, 림금숙 등 여성교수들은 1993년 11월 19일에 연변대학 지도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여성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술기관인 “연변대학 여성문제연구중심”을 설립했다(2000년 5월 18일에 여성문제연구중심을 여성연구중심으로 개칭했다).

1993년 11월 24일, 연변대학 여성문제연구중심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간의 “학술협력에 관한 협의서”가 체결되었다. 여성연구소들간의 자매결연을 바탕으로 해서 1996년 4월 2일에는 두 대학이 학술교류협정을 맺었다. 상호간 존중과 호혜평등을 원칙으로 교수 및 연구원을 상호 교환하고 공동 학술대회를 개최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된 학술교류협의서에 연변대학 박문일총장과 이화여대 윤후정총장이 서명함으로써 이후 두 대학은 본격적인 협력 체제를 열어가기 시작했다.

1993년 12월 1일-2일, 한국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에서 주최하고 서울시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 팔모정에서 개최된 “제1차 동북아여성학술대회”는 “한중 여성의 지위”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 대회에서 “중국 동북 3성 조선족여성의 지위”라는 주제를 가지고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대표 상무위원회 부주임 리봉련, 당시 료녕성 무순시 조선족중심소학교 교장 김죽화, 당시 할빈시 소수민족부녀연의회 부회장 최숙진 등이 길림성, 료녕성, 흑룡강성의 여성상황에 대해 발표했다. 이는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에 가서 처음으로 여성학학술대회에 참석한 사례다.

연변대학 여성문제연구중심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차 조선민족여성학술대회-조선민족 전통문화의 계승과 변형 속의 여성”은 1994년 7월 12일부터 13일까지 연변대학에서 개최되었다. 량옥금, 채미화 등 8명의 조선족 여성교수들이 논문발표를 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그동안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오는 동안 나타난 이질성과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의미 있고 유익한 시간 이였다고 할 수 있다.

제2차 조선민족여성학술대회는 1995년 11월 3일에 이화여대에서, 제3차는 1997년 6월 30일에 연변대학에서, 제4차는 1999년 2월 26일과 27일에 연변대학에서 열렸다. 제5차부터 제9차(2015년10월)까지의 조선민족여성학술대회는 조선 김일성종합대학 여성교수대표단이 참석하였고 연변대학에서 개최되었다. 논문발표를 통해 상이한 정치 경제체제 속에 있는 조선민족 여성학자들은 지구화라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여성문제의 공통성과 상이성에 대해 논의하고 친선을 다지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동안 연변대학 여성문제연구중심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간의 학술적인 친선관계를 탄탄하게 구축해온 하나의 축이 양쪽 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조선민족여성학술대회” 등의 국제학술대회였다면 다른 한 축은 교수 및 연구원들의 교환 / 연구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여성연구소에서 연변대학에 처음으로 파견했던 연구원이 바로 연변대학에 여성학 붐을 일으켰던 박혜란연구원(체류기간 1993.7-1994.4)이다. 연변대학에서는 1993년 9월에 파견된 조선문제연구소 한옥금연구원을 필두로, 1994년 9월의 리승매교수, 1997년 5월의 채미화교수, 1998년 4월의 량옥금교수, 1999년 11월의 김화선강사, 2001년 3월의 리해응교사, 2002년 4월의 강순화연구원, 2002년 9월의 김향화강사, 2003년 3월의 림금숙교수, 2003년 9월의 지미란교사, 2004년 9월의 조인복교수 등 11명의 중, 청년 연구원들이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에 파견되었다.

이들은 대략 6개월에서 1년에 이르는 체류기간 동안 한국여성연구원과 이화여대 여성학의 축적된 성과들을 접하면서 여성연구의 시야를 넓혀가는 한편, 한국여성연구원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특강 및 세미나에 강사로 참여해 중국여성, 조선족여성들의 현황에 대해 발표함으로써 한국측 연구자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역할을 해왔다.

1999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지난 17년간 연변대학 여성연구중심에서는 “직업여성문화연구반”을 운영하여 연변지역사회 여성교육에 힘을 쏟아왔다. 대학이 사회와 적극적인 관계를 맺어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과 시설을 지역사회에 제공하고 또한 사회로부터 새로운 자극과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이 대학의 임무중 하나라는 신념에서였다. 여성평생교육 이념으로 진행되는 “직업여성문화연구반”의 프로그램을 통해 연변대학 여성교수들과 연변지역의 직업여성들은 서로 친밀한 접촉을 많이 하게 되였고 아름다운 여성의 인생, 여성이 바라는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해 소중한 경험을 축적하게 되었다.

위에서 서술한 조선족여성학자들의 젠더지식 습득 및 이에 기초한 여성공동체 만들기 및 지역 여성운동은 중국조선족여성운동사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이 조선족여성들의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을 구성해갈 새로운 힘, 즉 여성학지식을 생산하고 있고 이런 지식들이 조선족여성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기여하고 있으며 조선족사회를 여성이 살기 좋은 아름다운 사회로 변화시켜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점만으로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