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휴직계를 내고 잠적한 홍기택 부총재 겸 투자위험책임자(CRO) 자리를 국장급으로 격하시킨 뒤 후임자를 새로 공모하겠다고 발표했다. AIIB는 후임 부총재를 프랑스 측에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4조3000억원의 분담금을 내면서 어렵게 확보한 부총재 자리가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홍 부총재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말 돌연 휴직계를 제출하고 AIIB 연차 총회에도 불참해 국제 망신을 샀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별관회의 회동을 폭로하면서 대우조선 사태의 책임을 정부 쪽에 돌려 파문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AIIB 부총재 박탈 사태를 부른 보다 근본적 원인은 박근혜 정부의 부실 인사에 있다. 홍 부총재는 산업은행 회장 시절 대우조선해양을 부실화시킨 장본인이다. 엄중한 책임을 물어도 모자랄 판에 청와대는 그를 국제기구 고위직으로 영전까지 시켜주었다. 박 대통령이 AIIB 총재를 직접 만나 한국 몫을 요청했고, 그 자리에 홍 부총재를 단독 후보로 밀었다.

홍 부총재는 3년 전 산업은행 회장 선임 때부터 자격 논란을 부른 현 정부의 대표적 낙하산 인사다. 금융 실무 경험이 전무(全無)한 교수 출신을 산업은행 회장에 앉힐 수 없다는 의견이 청와대 내부에서도 나왔지만 정부는 끝내 홍 회장을 밀어붙였다. 그는 대선 캠프 시절 박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인연을 맺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낙하산 인사는 없다"고 약속했으나 그 말이 지켜진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격 미달 인사가 정권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공기업과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번 홍기택 사태 역시 국내로도 모자라 '국제 낙하산'까지 강행한 현 정부의 부실 인사가 낳은 참변(慘變)이다. 대통령의 '수첩 인사'가 나라 망신, 임명권자 망신을 불러온 셈이다. 누군가가 책임지지 않으면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