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 / 기자

30년 전만 해도 한국인은 유학생이라고 하면 해외로 나간 사람들만 떠올렸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인은 주한미군, 외교사절, 선교사, 주재원, 특파원, 국제구호단체 봉사단원 등이었지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러 한국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생각지 못했다.

지난 4월 현재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외국인 유학생(교환학생·연수생 포함)은 10만3천509명에 이른다. 10년 전 3만2천557명에 비하면 3배를 넘는다. 출신국별로는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59.4%)이 압도적으로 많고 다음은 베트남(4.9%), 일본(3.8%), 몽골(3.4%), 미국(3.2%), 대만(2.2%) 등의 순이다. 전 세계 유학생 가운데서는 1.8%에 해당한다. 최대 유학생 유치국은 미국(18.5%)이며 영국(10.7%), 프랑스(6.8%), 호주(6.2%), 독일(5.1%), 러시아(4.3%), 일본(3.7%), 캐나다(3.0%), 중국(2.2%)이 뒤를 잇는다. 자국 대학생 대비 외국인 유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호주(18%)이며 다음은 영국(17%), 뉴질랜드·스위스(각 16%), 프랑스(12%), 미국(4%), 스페인(3%) 등의 순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유학생 수지 적자국이긴 해도 이처럼 외국인 유학생이 늘어난 것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한국에서 공부하면 배울 게 많고 일자리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는 외국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정부는 외국인 유학생을 늘리고자 비자 발급 요건 완화나 장학금 증액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 2013년에는 2020년까지 유학생 2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스터디 코리아 2020 프로젝트'를 세웠다. 경제 효과도 톡톡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지한파(知韓派)를 육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들도 일찌감치 발 벗고 나섰다. 전국 147개교의 기관이 한국어교육기관대표자협의회(한대협)를 결성해 유학생 교육과 관리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대협은 오는 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창립 10주년 심포지엄과 함께 제21차 하계 워크숍을 개최한다.

외국에 유학하려면 그 나라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익혀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민족 말고는 거의 쓰지 않는 한국어가 유일한 공용어인 우리나라로서는 구미 각국에 비해 유학생을 유치하는 데 불리하다. 한글이 가장 과학적인 문자여서 배우기 쉽다고는 해도 말을 익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또 사용 인구가 많거나 사용국가의 영향력이 크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배우려는 사람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한대협 소속 교수들이 안고 있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빼박캔트', '고답', '롱디연애', '츤데레', '제곧내', '낄끼빠빠'…. 짐작하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유행어다. 차례로 '빼도 박도 못한다(Can't)', '고구마를 먹을 때처럼 답답한 사람', '장거리(Long Distance) 연애', '겉으로는 퉁명스럽지만 속으로는 따뜻함', ' 제목이 곧 내용', '낄 사람은 끼고 빠질 사람은 빠져라'의 뜻이라고 한다. 당연히 교과서나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유학생들은 한국인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난 뒤 한국어 수업 때 교수에게 뜻을 물어보지만 대부분의 교수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난 5월 12일 경희대 국제교육원과 연합뉴스가 공동 주최한 '세계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중국 출신의 고등학생 송은찬 양은 친구가 '문화상품권'의 줄임말로 쓴 '문상'이란 말을 빈소를 찾아 상주를 위로하는 뜻으로 알아들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줄임말로 한국어가 파괴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중국에서 온 대학생 최선미 씨도 "한국 친구들이 한글을 처음 그대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용하지 않아 적잖이 놀랐다"면서 "세종대왕께서 한글이 이렇게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굉장히 속상해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약어나 신조어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의 확산으로 유행어의 생산 속도도 빨라졌고 양도 늘어났다. 그렇다 해도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유독 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물론 남매간에도 말이 잘 통하지 않을 지경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국적과 출처 불명의 억지 조어나 지나친 축약어도 넘쳐난다. 물론 기발한 발상이나 번득이는 재치가 느껴지는 것도 있고, 효율성 면에서 탁월해 보이는 단어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일부는 언중(言衆)의 선택을 받고 살아남아 사전 표제어에도 오를 것이다. 그전까지는 적어도 공신력이 있다고 자처하는 언론에서는 유행어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시대의 추세에 둔감할 수야 없겠지만 유행어의 남용을 부추겨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소리를 듣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