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4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새 학습 지도요령 사회과 해설서에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취지의 내용을 처음으로 명기함으로써 한일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후쿠다 수상의 ‘노력’에 의해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하는 직설적인 표현은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독도를 둘러싼 양국의 문제에 대해 ‘북방영토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영토 영역에 관한 이해를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즉각 일본정부에 대해 항의하는 한편, 주일 대사를 소환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의 모든 대중 언론 매체들이 연일 연야 일본을 성토하는 보도를 내보냈으며,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 수많은 관민 단체들이 일본과의 교류를 중단하거나 보류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반일(反日) 보도의 열기가 식어질 즈음, 이번에는 미국 정부에 의한 움직임이 한국의 대중 언론 매체를 독도 문제로 휩쓸게 했다.  7월 25일 (미국 현지) 미연방 지명위원회(United States Board on Geographic Names)가 독도의 귀속 국가에 대해 종래 괄호를 사용하여 한국을 표기해 오던 것을 ‘주권 미지정‘(undesignated sovereignty)’ 지역이라고 함으로써, 이른바 분쟁지역으로 명기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27일 이태식 주미 대사가 이러한 사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어 외교통상부는 세계 각국의 독도 ’오기(誤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신각수 제2차관 산하에 태스크포스를 신설하기로 했다고 보도문을 냈다.

외교통상부는 미국의 지명위원회가 분기마다 회의를 개최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면 일단 이를 재검토하게 될 것으로 안다고 하며 이러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하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독도 문제에 집착하여 아무리 외교적으로 애를 쓴다고 해도 ‘주권 미지정’을 ‘한국’으로 변경시키는 것은 그리 쉽고 단순한 일이 아니다. 지명위원회의 견해에 따르면, 이번 변경 조치는 이제까지 독도, 다케시마,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 등을 혼용함으로써 발생해 오던 혼선을 막기 위해 중립적인 용어인 ‘리앙쿠르 록스’로 표준지명을 결정했던 1977년 결정을 뒤늦게 현실화한 것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국 정부는 1977년 7월 14일부터 ‘독도’ 대신에 ‘리앙쿠르 록스’라는 명칭을 공식 사용해 오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지명위원회가 이제까지 취해 온 입장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한국측 견해와, 다케시마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측 견해 등을 모두 표기해 온 것이지 한국의 영유권만을 옹호하여 표기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한국측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는 것이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지명위원회가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 정부의 정책에 부합되도록 하기 위한 단순한 데이터베이스 정비작업’이라고 하며 특별한 의미 부여를 배제하고 있다는데 있다.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보고 개입을 자제하며 중립적 태도를 보여 온 미 국무부의 뜻을 반영하는 단순한 기술적 결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돌이켜보면 ‘해설서’ 문제로 한일간 외교적 공방이 치열하던 지난 7월 17일에도,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독도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며, 이 문제는 새로울 것이 없고 한일 두 나라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국무부의 입장 표명에 따라 지명위원회가 데이터베이스 정비 작업의 일환으로 ‘표기 변경’에 착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후 일관되게 미국은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분쟁지역으로 간주해 왔다. 이러한 자세에 대해 미국은 자신이 ‘중립적’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다고 하지만,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간주하지 않는 우리측에서 볼 때는 미국이 다소 일본 쪽을 두둔해 온 것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1951년 9월 미국 등 48개 연합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장 제2조 (a)항에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제주도(Quelpart), 거문도(Hamilton), 울릉도(Dagelet) 등’ 여러 섬을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규정했으며, 여기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계속하여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오고 있다.

이러한 일본 측 주장은 미국의 일관된 ‘중립적’ 입장이라는 버팀목이 있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제기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대일 강화조약 초안을 마련할 때부터 독도 문제에 관하여 일본측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해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 동란의 와중에서 이승만 정부는 대일 강화조약 초안을 접하고 1951년 7월과 8월에 양유찬 주미 대사를 통하여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 및 파랑도를 포함한 일본에 의한 한국의 병합 전에 한국의 일부로서 섬들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1945년 8월 9일 포기한 것을 확인한다”라고 문구를 개정할 것을 요청했다. 독도와 파랑도의 영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참고로 파랑도는 이어도(離於島) 또는 소코트라암(Socotra Rock), 중국어로 수이앤쟈오(蘇岩礁)라고 불리며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52㎞ 떨어진 동중국해(東中國海)에 있으며 암초(暗礁) 정상이 바다 표면에서 4.6m 아래에 잠겨 있어 파도가 심할 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1900년 영국상선 소코트라호에 의해 처음 존재가 알려졌으며 1984년 제주대학교 팀의 조사로 그 실체가 확인되었다.

아무튼 이승만 정부측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당시 미 국무부 극동 담당 차관보 러스크(Dean Rusk)는 1951년 8월 10일자 회답 서신을 통해 한국측 주장을 일축하고, “독도, 또는 타케시마, 리앙쿠르 록스로 알려진 섬에 대해서 무인도인 이 섬은 우리 정보에 의하면 한국의 일부로서 취급되었던 적이 전혀 없고, 1905년경부터 일본의 시마네현 오키 지청의 관할 하에 있었다. 이 섬에 대해 일찍이 한국에 의한 영토 주장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http://en.wikisource.org/wiki/Index:Rusk_note_of_1951]

또한 1954년 작성된 밴플리트(Van Fleet) 특명보고서에도 미국 정부의 견해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한국전쟁 때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밴플리트가 아이젠하워 대통령 특사로 한국과 일본 등을 방문한 뒤 작성한 이 보고서는 “미국은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생각하지만 논란에 끼어드는 것을 기피해 왔다”면서 이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돼야 한다는 게 미국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세계일보, 2006년 3월 27일]

이번에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주권 미지정’으로 명시함에 따라 미국 입장이 또 다시 분명해졌다. 여기에다가 지명위원회의 외국지명 웹사이트를 보면, 독도(Tok-to, Tok-do) 명칭이 한국령으로 표기되었을 때에는 일본 이름인 다케시마(Take Sima, Take-shima) 보다 위에 등재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일본 명칭이 한국 명칭보다 앞서 위에 표기돼 있어, 일본을 두둔하는 미국의 입장이 그대로 드러났음을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지명위원회가 한번 내린 결정인 만큼, 이를 번복시키기 위해선 단기적으로 충분한 자료와 근거 제시, 그리고 ‘오기’ 시정을 위한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가 필수적이다.

궁극적으로는 국력에 기반을 둔 외교력 신장만이 확실하게 미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책이라고 본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친일 성향의 인사들을 동원하여 미국 각 정부 부처에 대한 부단하게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이 대미 외교 현실에서 일본을 극복하는 일은 지난(至難)의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