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직순 / 편집인

이번 주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호주와 한국이 부채 위기(debt crisis)에 가장 취약한 7개 국가에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포브스는 “향후 3년 내에 부채 위기를 겪을 확률이 가장 높은 7개 국가 중 중국이 1위이고 호주가 2위, 한국은 스웨덴 홍콩에 이은 5위”라면서 “민간대출 비중이 국내총생산 보다 높거나, 국내총생산보다 급격히 성장할 때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 7개국은 국내총생산 대비 민간부채가 175%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포브스는 또 호주의 사례와 관련, “2008년 케빈 러드 총리의 호주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했던 경기 부양책으로 부채위기를 일시적으로 피할 수는 있지만 대출성장이 중단되는 시기를 무한대로 연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주가 부채 위기 두 번째 나라로 지적된 이유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엄청난 돈이 주택시장에 몰렸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사이 집값 폭등으로 모기지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단독 주택 중간 가격이 101만 달러에 이른 시드니는 75%(3/4) 지역이 평균 소득 가정이 구입할 수 없는 곳이다. 국가 경제에서 너무 많은 돈이, 특히 투기성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몰린 것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가격 하락(market correction)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포브스 발표와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는 “화훼 소비가 매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축하할 일’이 갈수록 줄어드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3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거래된 장미와 국화·카네이션의 3대 절화(꺾은꽃, cut flowers)류의 양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감소했다. 지난 2010년과 비교하면 5년 사이 거래량이 21%나 감소했다.
한국에서 1~3월은 연말과 연초 기업들의 인사로 축하할 일이 많은데다 밸런타인데이와 졸업·입학 등이 몰려 있어 5월과 함께 화훼의 최대 성수기로 꼽히지만 격감하는 수요로 화훼농가와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장미의 소득탄력성은 2.91로 쌀(0.23)의 10배에 달한다. 축하나 사랑 고백의 징표로 주고받는 장미는 소득탄력성(소득변화에 따른 수요변화)이 쌀의 10배에 달할 정도로 경기에 민감하다. 실용적인 소비가 늘면서 상대적으로 사치재로 인식되는 꽃 소비가 줄고 있는 것이다. 가계소득이 줄어들면 꽃을 덜 산다는 얘기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한국은행)은 2011년 131.3%에서 지난해 144.2%까지 높아졌다. 실제 쓸 수 있는 돈(100%)을 다 모아도 빚이 44%나 될 만큼 가계의 소비여력이 위축됐다. 이처럼 갈수록 위축되는 꽃 소비는 활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올 들어 경기 부진으로 가계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진데다 청년실업률이 12% 수준으로 치솟고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청년층이 늘어나면서 한국에서 화훼 산업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3포 세대’, ‘5포 세대’란 씁쓸한 유행어가 등장한 한국 사회에서 ‘졸업-취업-결혼-출산’의 연결고리가 끊기며 축하받을 일이 줄어드는 것도 꽃을 덜 소비하게 한다는 분석이다. 청년실업률은 2011년 7%대에서 2015년 9%대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혼인 건수도 한해 32만6,100건에서 30만2,900건까지 감소했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 한해 47만1,300명 수준이었던 출생아 수도 지난해에는 한해 43만8,000명으로 6.9% 감소했다.

호주는 상황이 어떨까? 호주에서 절화의 절반이 화훼 산업(Flower Retailing industry)을 통해 판매되고 나머지 절반은 수퍼마켓, 야채상점, 편의점, 온라인 등을 통해 팔린다.
아이비아이에스 월드(IBISWorld)는 2015-16년 총 절화 판매량을 7억1700만 달러로 추산했다. 2010-2011년부터 2015-16년까지 5년 동안 연매출은 0.7%씩 하락했다. 한국이 5년 사이 21% 하락한 것에 비교하면 호주(-3.5%)는 매우 양호한 셈이다.
호주에서도 꽃(절화) 판매가 소폭 하락세를 보인 배경에는 경제적인 것과 비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호주 경기의 전반적 침체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지출 하락, 인구 구성(세대)과 라이프 스타일, 문화의 변화가 매출 감소의 주요인으로 분석됐다.

두 나라의 통계에서 보듯 호주는 그래도 한국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수퍼마켓이나 야채상점, 너서리(화원)를 지나면서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이 꽃, 화분, 묘목을 사는 모습이 일상임을 느낄 수 있다. 축하받을 일이 줄어들지 않는 건강성이 호주 화훼 산업은 물론 호주 사회의 근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