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사회의학

그때도 그랬다. 옛날 옛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북쪽 나라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남쪽 나라가 있었다. 오랫동안 두 나라는 한 나라였다. 북쪽 나라엔 남쪽 나라 순희의 외할아버지가 살았고, 남쪽 나라엔 북쪽 나라 철수의 고모할머니가 살고 계시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나라는 둘로 나뉘어 서로 미워하게 되었다.

그때도 그랬다. 남쪽 나라는 힘센 이웃나라와 함께 매년 북쪽 나라를 선제공격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고, 북쪽 나라는 자신의 털끝 하나라도 건들면 자폭하겠다고 폭탄을 흔들어 대고 있다.

얼마 전에는 그나마 다시 하나가 되지는 못할망정 서로 욕하지 말고 사이좋게 냄비랑 신발이랑 함께 만들자던 약속마저 깨버리고 서로를 향해 확성기를 크게 틀어 육두문자를 교환하는 사이가 되어버리더니, 오늘은 또 그간 화해의 의미로 주고받았던 편지와 선물을 모두 태워버리겠다는 결별선언을 북쪽 나라가 해오고, 남쪽 나라는 그 편지와 선물은 원래 내 것이니 돌려달라고 우기는 막장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그때도 그랬다. 약 20년 전, 이렇게 서로 싸우다 식량이 부족해진 북쪽 나라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쪽 나라와 이웃나라 사람들은 그런 비극적 상황에 관심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북쪽 나라에 기근이 있다는 것은 ‘괴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쪽 나라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알았던 남쪽 나라와 이웃나라 사람들도, 자기 나라 곳간엔 쌀이 가득했지만, 이제 조금만 참으면 북쪽 나라가 곧 망할 거라고 하면서 식량을 지원하지 않았고 심지어 쌀을 주지 못하게 막기도 했다.

그런데 북쪽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약 30만명이 굶어 죽었다. 대부분은 어린아이와 노인이었다. 물론 그때 순희 외할아버지와 어린 철수도 굶어 죽었다. 옥수수죽도 못 먹고 배고파 죽은 외할아버지와 철수는 퉁퉁 부은 누런 얼굴에 눈도 제대로 못 감았다.

그때도 그랬다. 남쪽 나라는 30만명이 굶어 죽은 것은 전적으로 북쪽 나라 지도자 탓이고 남쪽 나라와 이웃나라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아주 고소하다고 박수를 쳤다. 그러나 어쨌든 그 후 남쪽 나라 순희는 다시는 북쪽 나라 외할아버지를 볼 수 없게 되었고, 북쪽 나라 철수도 남쪽 나라 고모할머니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배고파 죽은 외할아버지 귀신, 철수 귀신은 천당도 못 가고 오늘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일 ‘미국의 소리(VOA)’는 “북한이 굶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유엔이 북한을 또다시 외부 지원이 필요한 34개 ‘식량부족 국가’ 중 하나로 재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유엔 산하 국제식량농업기구는 “북한은 곡물 생산량 감소 등으로 부족한 식량의 양은 더 늘었지만 확보한 양은 오히려 줄어 현재 올해 부족한 식량의 96%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2월 초 현재 확보한 곡물은 외부 지원 8900t과 수입 8700t으로 특히 이 기간 북한이 수입한 곡물양은 지난해 같은 기간 2만4500t의 30%에 그쳤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4월부터 7월 중순까지 계속된 가뭄으로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크게 줄었고, 식량 상황은 지난 몇 년에 비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상황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건만,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북쪽 나라 지도자는 “우리는 끄떡없다”고 하면서 여전히 폭탄만 흔들어 대고 있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남쪽 나라 지도자와 힘센 이웃나라 지도자는 폭탄을 그렇게 흔들면 국물도 없다고, 그리고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북쪽 나라가 망할 거라고 하면서 남아도는 쌀 창고 문단속하느라 여념이 없다.

“북쪽 나라가 총 한 방만 쏴 주면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이길 텐데…”라고 남쪽 나라 어떤 정치가가 중얼거릴 때, 북쪽 나라 순희 외할머니가 말했다. “며늘아, 뭐 먹을 것 좀 없냐?”, 이어서 철수 동생 철이도 칭얼거린다. “아빠, 배고파.”

그때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