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미 기자 / 문화부

최근 몇 년간의 해외 출장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한류를 체감했던 시간’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스타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친절을 베풀어 주고, (저도 잘 모르는) 한국 영화배우와 감독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를 줄줄 읊고, (역시 잘 모르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패션 스타일을 꿰뚫고 있습니다. 한국어 잘하는 사람은 또 왜 그리 많은지요. 안에선 때론 막연했던 한류. 그 위력은 ‘떠나보면’ 확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새로울 것 없는 ‘한류’ 이야기를 다시 꺼냅니다. 완연하게 글로벌 문화의 한 축이 된 한류에 또 다른 무게감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26∼27일 양일간 홍콩 APA리릭극장에서는 국립무용단의 ‘묵향(墨香)’이 공연됐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적인 페스티벌, 제44회 홍콩예술축제의 메인 무대를 장식한 것입니다.

최현(1929∼2002)의 군자무(君子舞)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묵향’은 한국 무용을 제대로 구현하는 윤성주 안무가와 세련된 연출 감각을 지닌 정구호 디자이너의 합작품입니다. 매(梅), 난(蘭), 국(菊), 죽(竹) 각기 다른 색(色)이 한국의 미(美)를 뽐냅니다. 한 폭의 수묵화 앞에 1200석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환호했는데요. 그들의 열광적인 반응보다 더 놀라운 건 한국인인 저도 우리 춤과 옷, 그리고 우리의 소리가 그토록 아름다운지 몰랐다는 겁니다. 티사 호 홍콩예술축제 예술감독은 ‘묵향’을 본 후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국 무용의 정수를 쉽고 간결하게 전달한다”며 “대중문화에 이어 순수예술까지 장착한 ‘신 한류’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바깥’의 시선은 종종 ‘안’보다 정확합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무용일까.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은 “바로 ‘지금’이고, 그게 ‘무용’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공연예술 중 가장 열려 있는 창작 방식을 소유한 무용이, 모든 분야의 경계가 사라지는 융·복합 시대를 맞아 ‘신 한류’의 중심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뜻입니다.

홍콩발(發) 무용 한류는 이제 유럽을 향합니다. ‘묵향’은 오는 6월 프랑스 리옹 레뉘드 프루비에르 페스티벌로 갑니다. 같은 달, 프랑스는 말 그대로 한국 춤의 향연. 세계적인 무용가들만 오른다는 파리 샤이요 국립극장에서 우리 춤판이 두 번이나 열립니다. 주인공은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과 국립무용단의 ‘시간의 나이’.

마침 안은미 무용단이 ‘막춤’을 재해석한 ‘땐스 3부작’으로 한국 춤의 매력을 널리 알린 터라 더욱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