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수 ㅣ한국국정연구원장]

작년 연말 문 닫은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동원된 동포가 연인원 782만 명에 달한다. 한 사람이 2~3회 징용 간 경우도 있다지만, 많은 숫자이다. 이 중 일부는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돼 돌아오지 못했는데 최소 23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나라를 되찾은 후엔 유해라도 모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개별적으로 모셔오거나 한·일 정부 관계자가 공항에서 전달받는 식으로 그쳤다. 그러다가 위원회가 문을 연 후 일본에 끈질기게 요구해 2008년부터 양국 차원에서 예우를 갖추어 모시게 되었다. 일본의 유골 현황도 조사해 2700위의 존재도 확인했다. 사할린으로 동원돼 돌아오지 못한 동포의 유해 찾기 작업도 성과를 냈다. 5년간 사할린 공동묘지를 전수 조사해 2013년부터 봉환 희망 유골을 모셔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유골 봉환은 사망자 수에 비하면 극소수이다. 다 합해도 500위가 되지 않는다. 23만명에 비해 턱없이 적다.

반면 가해국 일본은 자국민 유해 조사와 수습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1953년부터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전시 일본 영역이던 지역을 조사하고 해당국과 협상해 많은 유해를 국립묘역에 안장했다. 지난달 24일 참의원을 통과한 '전몰자 유골 수집 제휴에 관한 법률안'에는 더욱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온전한 유골이 아닌 유발(손톱·발톱)이나 머리카락이라도 돌려받고 싶은 한국 유족들은 오래전부터 양국 정부에 DNA 감정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냉담하던 일본 정부가 지난달 18일 참의원 후생노동위원회에서 "한국이 요청하면 DNA 감정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뼈아프게 아쉬운 점이 있다.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 이 문제를 전담해온 위원회가 작년 말 문 닫고 흩어졌기 때문이다. 예산 문제를 들어 위원회 존속에 반대한 행정자치부나 정파 논리로 외면한 여야는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원회'라는 작은 정부 조직의 존재가 우리 국격을 지키는 일이자 최소한의 역사적 책무라는 점을 말이다. 복원되어야 한다.

한 가지 더 시급한 일이 있다. 70대가 넘은 유족들의 DNA 은행을 만드는 일이다. 일본이 한국인 사망자의 DNA 감정 결과를 제공하길 기다리지 말고, 유족들의 DNA를 채취해 보존해야 한다. 우리 동포가 사망한 지역은 일본만이 아니다. 동남아와 태평양 및 중국과 사할린까지 광범위하다. 이런 관련국 모두가 협상 대상이다.

국회와 행정자치부 등을 찾아다니며 눈물로 호소하고, 자비로 사진전을 연 할머니가 있다.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사할린으로 징용 가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분이다. 그의 소원은 '유해라도 모셔오는 일'이다. "나라가 없어 끌려갔지만, 이제 나라가 있으니 유해라도 찾아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호소에 할 말이 없다. 사할린에도 가 보았지만 묘소조차 찾을 길 없어 포기한 할머니의 마지막 소망이 DNA은행이다. 본인 생전에는 찾지 못한다 해도 DNA라도 나라에 맡겨 놓으면 마음 편히 여생을 마칠 것 같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국격'을 말한다. 국격은 바로 이런 역사의 아픔을 떠안고 지내온 국민을 보듬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