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진 / 駐삿포로 총영사

너덧 살쯤 됐을까, 눈망울이 맑은 남자아이가 딱지 같은 걸 갖고 놀던 참인지 조그만 목재 의자에 팔을 걸치고 편히 앉아 있는 사진 한 장. 지난해 봄 부임 인사차 여러 기관을 방문하던 중에 이소다 겐이치(磯田健一) 삿포로예술재단 이사장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너의 의자’란 제목의 포스터다. 궁금증을 표했더니 이소다 씨는 의자의 실물까지 보여주며 열띤 설명을 해주었는데, 한 생명에 대한 온 마을의 ‘헌시(獻詩)’라고 불러도 좋을 흥미로운 프로젝트였다.

이 사업의 골자는 지자체 예산으로 제작한 목재 의자에 아기의 이름과 출생일, 일련번호를 새겨 지역의 모든 신생아에게 선물한다는 것. 홋카이도(北海道)에 속한 히가시카와(東川) 등 여섯 군데의 작은 마을에서 지난 10년간 벌어진 일이다.

이 사업의 창안자인 이소다 씨는 “새로운 시민의 탄생을 따뜻하게 지켜보는 공동체의 힘을 되살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는데, 처음엔 작은 일에도 의미 부여하길 좋아하는 일본인들이라지만 지나치게 거창한 게 아닌가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뜯어볼수록 이 의자, 간단치가 않다.

우선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홋카이도에서도 생육 이력이 확실한 나무를 선정해 정성껏 가꾸고 베어낸 목재로 시작한다. 이 과정에 홋카이도대학의 삼림연구팀이 참여하는데, 수입 목재가 범람하는 시대에 지역 산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원목의 성장 모습과 주위 환경까지 꼼꼼히 기록, ‘나무의 앨범’을 만든다.

그다음은 의자 제작. 목재 가구로 유명한 아사히카와에서도 내로라할 가구 장인과 디자이너를 매년 선정, 앉는 것은 물론 두 발로 딛고 일어설 때 의지할 기둥 역할도 해주며 일생을 간직하게 될 아름답고 기능적인 의자를 신생아 수만큼 만들어낸다. 아사히카와 가구조합은 대량생산에 밀려 쇠퇴일로에 있는 지역의 공방을 부활시킬 절호의 기회라며 분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특별한 의자를 선물 받은 아이는 1000여 명.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에는 피해 지역인 이와테(岩手), 미야자키(宮崎), 후쿠시마(福島)에서 태어난 아이 98명에게도 전달했다. 그 10년의 역사를 역시 지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들이 매년 각자의 개성으로 기록해왔으며 앞서 말한 포스터도 그 결과물 중 하나이다.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을 꼽으라면 인구 감소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은 20세기 후반에 급속도로 고령화의 길을 걸어 2006년에 이미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2015년 기준 국가출생률은 1.26명이다. 한국은 일본이 걸어온 그 길을 더 빠른 속도로 따라가고 있다. 우리가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것은 2026년으로 추정되지만 2015년 출생률만 해도 1.21명에 불과해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에는 일본보다 노인 인구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너의 의자’ 프로젝트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은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인구가 급속도로 줄고 있는데 의자 몇 개 만들어준다고 어느 세월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을 요모조모 따져보다 보니 파도에 밀려서 모래밭에 흩어진 수많은 불가사리를 하나씩 집어 바다에 던졌다는 한 노인의 우화가 떠올랐다. 그런 식으로 저 많은 걸 언제 구하겠느냐는 나그네의 물음에 “당장 내 손에 잡힌 이 불가사리에게만큼은 구원의 기적”이라고 했다던가.

그즈음 일본에선 한 남자 중학생이 이지메(집단괴롭힘)에 시달리다 자살했는데 죽기 전 담임교사와의 통신노트에 괴로운 심경을 절절히 호소했던 것이 드러나 사회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한국에서도 공부 스트레스와 왕따 등으로 아까운 청춘들이 목숨을 버리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런 비극을 막는 데 ‘너의 의자’ 프로젝트는 작지만 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청소년들에게 “우리(지역사회)는 너를 소중히 여기니, 너도 힘을 내어 살아달라”고 작은 의자가 웅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국가 출생률의 목표치, 이를테면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제3차 내각 개각을 앞두고 내세운 ‘1억총활약사회’의 중요 목표인 출생률 1.8명은 단지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천신만고 끝에 태어나준 어린 생명들을 소중히 돌보는 일이며 그러다보면 문제의 출생률에도 느리게나마 반전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온 지역사회가 아이디어와 기술을 모아 제작한 의자 하나, 그렇게 작은 것에 착안해 온갖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며 목숨을 건 듯 매달리는 일본인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 정성과 집요함이라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았으면 한다.

▲ 너의 의자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