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니엘 / 페닌슐러모니터그룹 대표

남북전쟁을 끝내고 미국 18대 대통령이 된 율리시스 그랜트는 워싱턴의 격무를 벗어나기 위해 가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 있는 윌러드 호텔로 몸을 피하곤 했다. 하지만 각종 청탁을 하려는 사람들이 거기서도 그를 기다렸다. 호텔에 들어선 그랜트가 로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가리키며 한 말이 있다. '저런 로비스트들!' 로비스트라는 특이한 직업군의 탄생이었다.

로비스트 하면 스캔들, 무기, 파티 같은 어휘와 함께 돈이 오가고 무언가 구린 방법으로 일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에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뉴욕주지사를 지낸 앤드루 쿠오모는 미국 정부가 때로는 '민중의 울음보다 로비스트들의 속삭임에 좌우된다'고 개탄한 적이 있다. 그래도 워싱턴에서는 로비가 합법이고 호황이다. 미국 수정헌법은 인민이 '불만의 해소'(redress of grievances)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로비 활동이 곧 청원 활동이다.

워싱턴 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K스트리트 일대에는 권력을 가졌었거나 권력에 접근 가능한 이들이 몰려 로비업에 종사한다. 물러나는 상원의원의 50%, 하원의원의 40%가 로비스트가 된다. 2015년 기준으로 법무부에 등록된 로비스트만 1만1000명이 넘고, 그들이 받은 공식적인 보수가 32억 달러를 넘는다.

한국과는 관계가 없을까? 2016년 현재 미국 로비회사가 한국을 고객으로 활동 중인 안건이 21건이다. 일본은 52건, 중국은 11건이 등록돼 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건수보다 '내용'이다. 이스라엘을 포함해 다른 나라는 대개 로비할 때 무역이나 방위산업에 집중한다. 반면 한·중·일은 '과거'를 놓고 싸운다. 아시아의 역사문제가 워싱턴에서 로비업의 대상이 된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상하 양원 연설에서 역사가 왜곡되는 사태를 막도록 한국 정부는 기존에 이용해온 F사, S사, T사 외에 B로비회사를 추가했다. 이에 대응해 일본 정부도 새로 발족한 D사를 추가로 고용했다.' 2015년 4월 미국 언론 보도다. 일본이 고용한 'D사'란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지낸 톰 대슐(Daschle)이 차린 로비회사다.

현재 워싱턴에는 역사문제와 관련해서 한·일 양국 정부가 고용한 로비회사가 10개에 가깝다. 이런 로비가 국익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점이 있다. 미국은 '말'[言]의 나라라는 것이다. 한국은 혈연적 공통성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그래서 과거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우리나라 소녀들이 일본 군대에 끌려가 고생했다"는 프레임을 사용한다. 남들의 악행(일본)과 우리의 설움(한국)을 대비하면, 미국도 저절로 우리에게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은 다인종 합중국이다. 그들은 자유, 공정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논리를 편다.

그들을 상대로 우리 이익을 확대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지금처럼 한국의 한(恨)을 읍소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납득할 수 있는 적확하고 설득력 있는 말을 만들어서 '일본의 역사관을 용인하는 것은 보편적인 자유와 정의에 어긋난다'고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청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