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 동국대 석좌교수, 前 통일연구원장

지난 7일, 북한이 ‘우주개발 로켓’이라는 거짓말을 앞세워 또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1월 6일 4차 핵실험 이후 유엔이 대북 제재를 논의하는 중에 자칭 ‘광명성 4호’를 쏜 것이다. 북한이 막무가내로 핵·미사일 실력을 키워온 세월이 반세기가 넘지만, 한국은 근본적 치유책을 마련하긴커녕 허둥대기만 했다. 이제야 한·미 양국은 사드(THAAD) 배치 문제를 공식 논의한다지만, 사실 이는 북핵에 대비하기 위한 조그마한 출발에 지나지 않으며 진작에 결정했어야 할 문제다. 찬반으로 갈려 갑론을박할 일도, 중국의 눈치를 볼 일도 아니었다. 결국,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김일성은 6·25 휴전 직후부터 “미국의 핵 위협 때문에 중·러가 결정적으로 돕지 못해 적화통일에 실패했다”는 한(恨)을 품고 1950년대부터 인력 양성을 서둘렀다. 1960년대부터 핵시설을 건설하고 1970년대부터 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북한은 원폭과 증폭분열탄을 넘어 수폭을 개발하고, 이들을 실어 보낼 중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확보해 ‘핵 보유 기정사실화’에 성공했다고 판단하는 시점이 되면 ‘장군님의 통 큰 결단’을 앞세우면서 시혜라도 베풀듯 모라토리엄(핵실험 중단)을 선포하고 현상 고착화를 시도할 것이다. 당연히, 그때까지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계속할 것이다.

이렇듯 북한의 집요한 핵 의지에 비한다면, 한국의 대응은 너무 허술했다. 노태우정부는 최소한의 핵외교력이자 핵잠재력인 농축과 재처리를 포기하는 우책(愚策)으로 북한에 뒤통수를 얻어맞았고, 김영삼정부는 미국의 ‘영변폭격 계획’을 만류해 하늘이 내린 기회를 차 버렸다. 김대중정부는 “북한은 핵을 만들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거짓말했고, 노무현정부의 ‘내재적 접근론’은 북핵을 두둔했다. 그리고 북한의 핵의지와 능력을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고언(苦言)을 탄압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대북 원칙론을 펼칠 때 북핵 문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상태였다. 지금도 한국은 문제가 불거지면 애절한 눈빛으로 베이징과 워싱턴을 쳐다봐야 하고, 그렇다고 군이 죽기 살기로 북핵 위협을 상쇄하는 조치들을 취해온 것도 아니었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를 앞두고 군이 내놓은 대응책도 문제의 치유와는 거리가 먼 ‘탐지추적’과 ‘예의주시’였다.

이제는 국민이 총체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지난 정부들의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 매번 거듭되는 전임 정부와의 단절, 능력과 전문성을 배제한 코드·측근 인사의 반복, 정쟁(政爭)으로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는 정치권, 집권 세력에 따라 논리를 바꾸는 전문가들, 북한의 ‘수소탄 실험 성공’ 선언이 2주 만에 방송에서 사라질 정도로 시청률의 노예가 된 언론의 합작품이다. 또, 북핵 문제가 1990년대 초에 시작됐고 미국 때문에 합의가 깨졌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 번도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지 못할 만큼 ‘행정군대’ 체질이 된 군(軍) 등을 잉태하고 출산한 산모가 바로 국민이다.

북한은 지금도 핵을 앞세워 갑질을 시도하고 있다. 10여 년이 더 흐르면 한국은 수폭까지 거머쥔 중견 핵보유국 북한의 ‘슈퍼 갑질’에 더욱 심하게 시달려야 할 것이다. 특정 정부나 정당 또는 부처를 탓할 때가 아니다. 지금까지 누적된 대한민국의 실패들을 인정하고 거국적 핵안보 체제를 향한 다짐을 새롭게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