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식 / 부경대 강사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기록유산 공동등재신청서 조인식이 지난 1월 29일 대마도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 나는 한국 측 학술위원 자격으로 참가했다. 배를 타고 떠나는 날, 비바람이 세차 파도가 높았다. 대마도에 닿기까지 파도는 잦아들 줄 몰라 유리창까지 할퀴고 들면서 배를 흔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돌아갈 배는 결항이 되어 부득이 하루를 더 묵고 부산을 향하는 배에 올랐다.

하기야 대마도를 오가는 바닷길이 거리는 가깝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조선통신사가 대마도로 향하는 배를 띄울 때 바람과 조류 등 최적의 날을 잡기 위해 한 달 넘게 부산에 체류하기도 하였다. 어렵사리 배를 띄우더라도 예상치 않은 변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1655년 통신사 종사관 남용익도 대마도 가는 뱃길에서 사나운 풍랑을 만났는데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조금 있다 배의 다락이 흔들거려 자못 현기증을 느꼈다. 모여 앉았던 사람을 돌아본즉 소동은 이미 정신없이 쓰러졌으므로 부축해 판방(板房)으로 내려가게 하였다. 기운이 심히 불평하여 벽을 향하여 가만히 누웠으나 조금만 움직여도 어지러웠다. 창밖의 사람마다 구토하는 소리가 들리고, 뱃멀미를 면한 사람은 겨우 몇 사람이었다. …오후에 풍파가 더욱 급하여 소리는 뇌성 같고 높기는 산 같았다. 배 사닥다리 나무가 또 부러지니 배가 출몰하는 것이 하늘에 올랐다 땅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물결이 판방에까지 미쳐서 입은 옷을 다 적신 것이 두 번이나 되고, 판방 밑에도 물의 깊이가 벌써 사람이 잠길 만큼이나 되었다(부상록, 1655년 6월 9일)."

이런 상황에서 죽지 않고 뭍에 닿았다면 천운을 타고 났다 할 만하다. 대마도에 가본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중에 하나가 바로 1703년에 일어난 조난사고다. 이 섬 최북단의 한국전망대 옆에 서 있는 '조선국 역관사 조난 추도비'를 한 번은 다 보았을 것이다. 그해 대마도 도주가 바뀐 것을 축하하기 위해 조선에서 역관을 정사로 하여 사행을 보냈다. 대마도는 조선과 에도 막부의 외교에서 가교역할을 하는 곳이기에 당시 조선으로서는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증정교린지' '문위각년례'에는 이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숙종 29년 대마도주 의방이 대마도로 돌아오고 구 도주 의진이 죽었으므로 당상 한천석과 당하 박세량을 보내어 문위하고 아울러 조위하도록 했으나 도중에 파선하여 일행이 몰살되었다." 여기에 다음과 같이 주를 달아 놓았다. "관수왜(館守倭)가 말하기를, 비선(飛船)이 나오고, 바다를 건너던 관인의 배가 악포(鰐浦) 70리에 미치지 못하여 바람을 만나 부서져 일행 및 일본인 사공왜(沙工倭)가 모두 빠져 죽었다고 하였다. 바다를 건널 때 파선하여 몰살된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일로 백여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 몹시 놀랍고 애통한 일이다.… 파선된 곳이 이미 험한 바다를 지난 곳이고 차왜도 무사히 돌아간 것 또한 그 단서를 밝히지 못하니 지금까지 의심스러운 사건으로 남아 있다." 말인즉 이 일이 단순 조난사고가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듯 대마도를 오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험난하다. 풍랑을 헤치며 오가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문제는 '대마도는 에도까지 다녀오는 대장정의 첫 기착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부산과 대마도 사이에 출렁거리는 파도는 앞으로 헤쳐 나갈 수많은 난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편견과 불신으로 얽힌 두 나라 민심은 거센 파도와 어우러져 한일관계를 혼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지금도 한일관계는 사나운 파도에 출렁거린다. 위안부 문제가 거대한 풍랑이 되어 양안을 거세게 할퀴고 있으며, 여기에 축구 한일전은 스포츠를 넘어서 불난 집에 끼얹는 기름과 같이 폭발력을 지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웃국가 일본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어디에서 배울 수 있을까? 그 해답이 바로 조선통신사의 기록에 담겨있다. 여기에는 두 나라의 외교임무를 띤 사람들이 냉철한 판단력과 초인적인 의지로 온갖 당면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체제를 공고히 다지고 지속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의 가치를 일깨워 오늘날 한일관계를 푸는 지혜를 얻는 것은 물론, 양국 평화를 위해 오간 조선통신사의 세계사적 의의를 공유하자는 것이 이번 등재 추진의 핵심 목적이다. 긴 안목을 가지고 한일관계의 해법을 찾아야 할 지금, 조선통신사 기록이 무엇보다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