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옥 /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세계 각국은 경제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돌파구로 이란을 주목하고 있다. 이란이 그동안 경제 제재로 장기 침체에 빠져 있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금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매장량 세계 4위인 원유, 2위인 천연가스 등 자원에 대한 생산과 수출길이 열리게 되고, 동결된 해외 자산이 풀리면서 세계 각국은 이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축전에 나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제재 해제 일주일 만인 지난 23일 테헤란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이란과 중국의 양국 교역 규모를 10년 안에 6000억 달러까지 확대하는 데 합의했다. 또한, 양국 관계를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일본도 중국에 이어 이란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이란을 방문해 이르면 다음 달 투자협정 서명으로 인프라 투자의 발판을 만들고 경제 협력을 모색할 예정이다. 유럽 역시 경제 제재 이후의 진출에 대비해 발 빠르게 조치를 해왔다. 경제 제재 해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지난해부터 이미 경제 사절단을 파견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로하니 대통령이 25일부터 유럽을 방문해 이탈리아 기업들과 약 22조 원에 이르는 계약을 체결했고 프랑스와는 에어버스 114대 도입 계약으로 이어졌다.

한국과 이란의 교역 역사는 짧지 않다. 또한, 한국의 대이란 시장점유율은 2011년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국방수권법’ 시행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 앞설 정도로 이란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그러나 경제 제재를 이유로 대다수의 우리 기업들이 이란 시장에서 철수한 사이 그 틈새를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점유율 1위를 놓치게 됐다.

경제 제재가 해제된 지금, 아직까지도 우리 정부는 이란 시장 진출에 미온적이고 한발 늦은 조치만을 내놓을 뿐이다. 물론 핵협상 타결 이후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외교장관이 지난해 11월 7일 테헤란을 공식 방문해 모하마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과 회담하고 로하니 대통령을 예방했다. 외교장관의 14년 만의 이란 방문은 한국-이란 경제 협력의 증진과 북핵 대화 진전을 위한 것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오는 2월 말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민·관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이란을 방문해 장관급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행보는 정상급이 나서는 세계 각국의 적극적인 이란 시장 진출 의지에는 미치지 못하는 대응이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우리의 외교 역량을 집중하지 않으면 현재 차지하고 있는 이란 시장에서도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을 순방하며 아랍에미리트(UAE)에서 10조 원의 원자력발전소를 수주한 전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대외 수출 부진에 빠진 한국의 경제 국익을 위해 바로 지난해의 중동 순방 때와 같이 국가의 수장을 비롯한 전방위 외교를 펼쳐야 한다. 한국도 이제 대이란 수출시장을 뚫기 위한 스마트 전략을 세워야 한다. 경제 협력 증진뿐만 아니라 정부·외교·민간외교 차원의 교류를 확대해 민관 합동 외교 전략의 수립이 절실하다.

끝으로,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인한 심각한 경제난과 실업난으로 폭발 직전이었던 이란 국민의 불만과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이란 정부가 핵보다는 경제를 선택한 것은 북한의 김정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