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경옥 / 논설위원

심리학 용어중에 `확증 편향`이라는 게 있다.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심리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합하고 불리한 증거는 의도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배척해버리는 인지적 오류다. 자기 위주 편향(self-serving bias)`라고 정의했는데 비슷한 얘기다.주식투자자들이 다른 수많은 정보들은 무시한 채 자신이 보유한 종목이 오를 이유만 믿는 것이나 부모들이 "내 아이는 착한데 나쁜 친구들 만나서 그렇다"거나 "우리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그렇다" 는 식으로 자기 아이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인 확증편향이다.

미국 터프츠대학의 심리학자 레이먼드 니커슨은 "확증편향은 개인, 집단, 국가차원에서 발생하는 모든 논쟁과 오해, 갈등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자신이 옳다는 증거만 선택적으로 취합하고 상대방에게 유리한 정보와 증거는 무시해 버린다. 자기와 같은 성향의 사람들만 만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아예 배제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인터넷 댓글들은 확증편향의 생생한 증거들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확증편향은 이성에 관한 뇌의 영역이 아닌 감정을 처리하는 뇌 영역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는 확증편향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역사적으로도 확증편향은 왕조와 나라의 운명을 갈랐다. 위나라 조조가 오나라 손권, 촉나라 유비와 적벽대전에서 맞붙었을 때다. 위나라 군사들이 오나라 군사들에 비해 수전(水戰)에 약하다는 점을 내심 걱정하던 조조는 제갈량의 부탁을 받은 책사 방통이 찾아와 배들을 쇠사슬로 묶어 육지처럼 평평하게 하라고 조언하자 얼씨구나 받아들인다. 정욱 순유 등 참모들이 화공(火攻)을 우려했지만 조조는 `한겨울에 동남풍이 불겠는가`라며 듣지 않았다. 싸움도 하기 전에 승리감에 취한 조조는 시를 지어 자축하는데 유복이 끼어들어 한 구절이 불길하다 하자 창으로 찔러 죽인다.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과 어긋나는 말을 들으면 불편하고 불쾌해지는 확증편향의 증상이 제대로 발현된 것이다. 조조의 확증편향은 유복 하나만 죽인 게 아니라 100만 대군을 몰살시키고 조조 자신도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는 궤멸적 결과를 초래했음은 삼국지에 기록된 대로다.

요즘 청와대를 보면 확증편향의 경연장을 보는 듯 하다. 유리한 지표만 골라서 성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9월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로 높이자 박근혜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신용등급 상향을 주요 경제성과로 거론했다. 지난 달 27일 세계은행이 기업환경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 4위`로 평가하자 박 대통령이 안종범 경제수석 등 참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칭찬했다고 한다. 이달 9일에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최근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세계 주요 국가들 중에 아주 양호하다는 분석을 내렸다"며 자화자찬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4위`라는 평가는 기업인 누구에게 물어봐도 뜨악한 반응 밖에 안 나오는 얘기다. 국가신용등급이나 재정건전성은 국가 채무를 갚을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지표는 재정상황, 외환보유액 등이다. 성장률 등 경기지표도 영향을 주지만 그 정도는 미미하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신용등급 상향=경제 호전`으로 국제사회가 평가한 것처럼 발표한 것이다.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 대통령이 "한국의 구조개혁 성과가 G20 중 2위"라고 말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노동개혁은 국회서 꽉 막혀있고 금융개혁은 은행들조차 헷갈려 하고 있고 교육개혁·공공개혁은 손도 못댄데다 산업·기업 구조조정도 지지부진한데 어떻게 `G20 중 2위`라는 성과가 도출됐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반면 불리한 증거는 과소평가 하거나 무시하려는 경향이 확연하다. 10월 수출이 15.8%나 줄어 2009년 8월 이후 6년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가 나서 "올들어 1~8월까지 세계 각국의 수출이 다 감소했는데 우리 수출 감소폭이 그래도 세계에서 세번째로 작은 편"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한 게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확증편향은 역대 정권마다 반복돼 왔다.반환점이 꺽이면 정권은 성적표를 의식하게 되고 크게 내세울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 당황한다. 대통령으로선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국민들이 몰라주나`하는 억울함도 생긴다. 대통령의 심기를 읽은 참모들이 관료들에게 `우리가 잘 한 것은 없나요?`하고 묻는다.국내 평가가 좋지 못한 것은 정부의 홍보 부족이 원인이니 해외 지표 위주로 홍보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청와대 주재로 매주 점검회의가 열리고 각 부처는 국제기구 등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여 더 나은 지표들을 만들어낸다. 살짝 마사지가 가해 진 지표에 아전인수(我田引水),침소봉대(針小棒大) 해석을 곁들이면 설득력은 배가된다. 설령 지표가 반짝 좋게 나와도 구조적 흐름이 하향하고 있다면 그것은 지옥으로 가는 기차가 잠시 느려진 것에 불과한데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 벌어지는 것이다.

지표와 숫자는 관료들의 비기(秘器)다. 정권이 요구하는 것, 대통령을 기분좋게 할 지표는 얼마든지 발굴해 낸다. 5년 단위 정권교체가 반복되면서 관료들은 솜씨좋은 기술자가 됐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직(職)을 걸고 위기를 고하는 기능은 거세된 지 오래다. 인사권자 앞에서 감히 불편한 말을 섞지 않는 것은 관료 생존의 제1 법칙이다. 지금 위기가 깊어지고 있고 구조조정 타이밍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관료는 없다. 하지만 2년 후면 바뀔 대통령인데 굳이 안좋은 얘기를 꺼낼 이유가 없다. 그저 내 임기중에만 불이 안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지금 청와대가 허심탄회 직언을 허용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재가한 사안도 관료가 거부하면 문제삼지 않았다. 나중에는 도리어 칭찬하는 경우가 많았다거고 한다. `싫은 소리하는 참모를 곁에 둘 아량조차 없이 어떻게 대통령을 하겠나`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세계 2차대전 때 윈스턴 처칠 수상은 나쁜 정보, 불리한 소식만 전담하는 보좌관을 따로 두고 한밤중이라도 즉각 보고하도록 했다. 좋은 소식은 나중에 들어도 상관없지만 나쁜 소식은 바로 대처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정립하면서 자신의 이론에 반대되는 증거가 나타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일일이 수집하고 수첩에 기록했다.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으려는 나름의 고육책이었다.

파국적 재앙이 눈앞에 닥쳤을 때 85%의 사람들은 몸이 굳은 채 그저 막연히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자기 최면을 건다고 한다. 탈출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상화 편향이다. 대통령 총리 장관 할 것 없이 위기를 부정하는데 위기를 헤쳐나갈 해법이나 돌파구가 나올 리 없다. 지금 대통령에게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관료들의 속임수를 꿰뚫어볼 혜안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