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도 / 삼일회계법인 전무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라는 시민단체는 2012년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한국인 재산이 7790억달러(약 888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해외에 숨겨진 한국인 재산이 이렇게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역외 세원 양성화를 위해 2010년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를 만들어 납세자들이 스스로 해외 재산을 신고하도록 유도했다. 이에 따르면 10억원을 초과하는 금융계좌를 갖고 있는 거주자나 내국법인은 이를 신고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2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 등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역외 재산 탈세·조세 회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보 접근, 추적 등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로 인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는 달라진다. 미국을 비롯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역외 탈세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에 합의했고, 그 결과 상대국 거주자 금융정보를 교환하는 제도를 마련해 시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과 미국 국세청은 지난해와 올해 말 2년치 두 나라 거주자의 이자, 배당, 기타 원천소득, 계좌 잔액 등 금융정보를 내년 9월부터 교환하기 시작한다. 2017년부터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51개국과도 각국 거주자에 대한 금융정보를 교환한다. 과세당국이 납세자의 자발적 신고에 의존하지 않고도 역외 소득·재산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이 같은 금융정보 교환에 앞서 지난달부터 내년 3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미신고 역외 소득 재산 자진신고제도를 마련했다. 이 기간 중 과거에 신고하지 않았거나 적게 신고한 국외 소득·재산 등을 자신신고해 납부하면 가산세, 과태료 등을 면제하고 재산 형성 과정에서 드러난 조세포탈 등에 대해서도 형사 관용 조치를 부여하겠다는 게 골자다.

앞으로 각국 정부 간 공조가 현실화하면 역외 재산 은닉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그동안 성실한 신고·납세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면 이번에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자진신고 기회를 활용하는 게 최선의 대응 방안이라고 본다. 다만 역외 재산 신고는 사안에 따라 국내는 물론 상대국 각종 세무 신고·납세의무와도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처리할 것을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