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권/샌프란시스코총국 편집국장

"샌프란시스코(SF) 한 가운데 위안부 기림비 설치 움직임이 있다."

애초 이 말을 들었을 때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SF 시의원 11명 중 8명이 위안부 결의안을 공동발의했다지만 '발의만 한 것 아닐까?'는 의심도 가시지 않았다. 미국 대표 대도시 중의 하나인데다 일본기업이 포진한 실리콘밸리가 그 배후지역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타 지역에서 일본계의 방해로 무산된 소식도 들린 터였다.

시의회 상정이 가까워질수록 '아니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7월에 첫 상정돼 결의되지 못했다. 폐기 위기에 몰렸다가 9월에 재상정됐다. 이때부터 일본의 로비가 본격화됐다.

이미 4월에 아베 총리가 SF를 방문했다. 각 처에 투자를 약속하고 관심을 표명했다. 그리고 8월 27일.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가 SF 시의회로 편지를 보냈다. 'SF시의회에 상정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우려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망언을 자주 했던 사람이다. 오사카 시장으로 자매도시 SF를 방문하려 했을 때 SF시는 "시민이 환영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일본커뮤니티의 움직임도 조직적이고 빨라졌다.가주 발행 재팬 데일리는 SF 기림비 진행 과정과 공청회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며 저지에 나섰다. 또 일본 단체 '나데시코 액션'은 항의서한을 보내고 직간접 방해 활동을 했다.

9월 22일 표결을 앞두고 17일 공청회가 열렸다. 의원 상당수가 반대쪽으로 돌아섰다는 루머에, 발의한 의원 중 반란표가 다수 있다는 소문도 났다. 표결 당일. 긴장감 속에 의회를 꽉 채운 시민들. 표 대결이면 근소하게 이길 것이라는 수근거림도 있었다. 이때 미묘한 조짐이 일어났다. 한인 제인 김 의원의 진행 발언이었다. "여기 와 계신 이용수 할머니는 전쟁 때 이름도 모르는 남자들을 하루에 수십명씩, 그것도 강제로, 상대해야했다. 이유도 모른 채 말이다. 대체 그때 어떤 일들이 벌어졌다는 말인가. (한국말로)할머니가 우리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장내는 술렁였다. 이어진 발언은 7월에 기림비 반대의사를 보였던 데이비드 캄포스 의원.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일본 친구들과 주변에서 해 준 말이 사실이 아니었군요. 할머니… 죄송합니다." 그는 울먹이며 말했다.

나머지 시의원들의 발언도 이어진 후 표결 시간. 런던 브리드 시의회 의장은 표결 직전 의원들과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확인했다. "어때요? 괜찮아요? 말씀 다 하신거죠?" 이윽고 의장의 한마디. "자. 이의 제기가 없으므로 이 안건은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겠습니다." 시의회를 가든 메운 청중들에겐 박수와 환호가, 이용수 할머니에게선 눈물이 쏟아졌다.

이런 내용들을 듣고 보고 파악하면서 가슴 한 곳이 찡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도대체 뭐지? 답은 쉬웠다. 위안부 기림비를 반대했던 캄포스 의원. 그는 이용수 할머니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는 생각을 바꾸며 눈물을 흘렸다. 진실을 대면한 뒤 '아니다'라고 바꿀수 있는 용기였다.

그리고 시의회 의장은 발의안 미 서명자 3명이 있음에도 표결에 붙이지 않았다. 의회를 물들인 위안부의 진실 속에서, 그 진실과 마주한 뒤 반대자가 없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샌프란시스코는 현대 미국 자유주의 정신의 고향이다. 이번 일은 '샌프란시스코스러움'을 조용히 보여준 결과다. 그런데 야릇한 여운도 있다. 정치적 판단은 없는 걸까? 샌프란시스코 인구 중 24%가 중국계다. 이들에게 밉보이면 시의원 당선이 어렵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기림비는 중국계가 앞장섰다. 중국계가 가진 정치적인 힘이 한 없이 부러워진다. 우리는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