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대구대 교수

지난 5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국내 언론은 곧 나라가 망할 듯 호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성급히도 많은 이들이 필자에게 한국의 대응 방안을 묻는데, 지금 시급한 것은 그게 아니라 TPP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이에 몇 가지 핵심 논점에 대해 사실과 진실을 우선 정리해 놓고자 한다.

먼저 TPP 타결의 최대 의의는 그 확장성과 파장이다. TPP의 출범 못지않게 중요한 의의는 그 확장성이다. TPP는 애초부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1개 회원국의 자유무역협정(FTAAP)을 추구하는 ‘살아있는 협정(Living Agreement)’이다. APEC에는 세계의 공장 중국과 세계의 시장 미국이 포함돼 있고 선진국과 개도국도 고루 분포되어 있어 TPP 규정이 글로벌 표준이 될 가능성도 높으니 APEC의 TPP 미참가국이 무시하기 힘든 것이다. TPP를 ‘한·일 FTA’로 보는 협소한 시각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TPP 타결이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다. 이는 여타 메가 FTA 추진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동아시아는 미국→중국, 일본→중국이라는 ‘이중 세력 전이’가 발생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한·미 FTA가 체결될 때 이것이 현재와 같은 메가 FTA 도미노의 기폭제가 되리라는 것은 일찌감치 예견된 미래였다. 다만 이러한 사실의 재구성을 통해 볼 수 있는 진실이 의외로 간과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TPP는 참가 여부가 아니라 참가 시점과 방식의 문제다. 그렇다고 당장에라도 TPP에 가입하지 않으면 큰일 날 듯 조바심 낼 일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먼저 TPP 타결로 탄생하는 전 세계 GDP 38%의 거대시장에서 배제된다는 주장은 무지에 의한 미필적 고의이거나 의도된 왜곡이다. 정부가 즐겨 쓰는 ‘경제영토’(FTA 상대국의 GDP 총액) 개념을 빌려보면 이미 한국은 TPP 12개 회원국 중 10개국과 FTA를 체결했으니 TPP 경제영토 중 3분의 2 이상이 우리의 경제영토이기도 하다. TPP 불참 시 누적원산지규정을 적용받지 못해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이 불리해진다는 주장도 사실 너머의 진실을 가린 것이다.

원산지규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뉘는데 그중 하나가 부가가치기준이며 현재 논의되는 누적규정은 여기에만 해당된다. 산업통상자원부나 한국무역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이로 인한 확고한 수혜업종은 섬유와 석유화학 정도다. 더욱이 원산지규정은 품목별로 세세히 적용되는 매우 복잡한 것인데 아직 우리는 그에 대해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것은 TPP에는 현재 중국, EU 등이 빠져 있어 자동차의 예에서 보듯이 60% 이상의 부가가치를 역내에서 채우기는 버겁다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TPP는 한·미 FTA를 모델로 하였으되 회원국 간 역학관계에 의해 점차 변용되었다. 이는 언제라도 새로운 회원국의 영향력 여하에 따라 TPP 규범이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 TPP 규범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참가를 희망하면 12개 회원국의 승인을 일일이 받아야 한다고 말하나 이 또한 각국의 개별참가 시의 규정이고 만약 다수 국가가 동시에 재협상을 원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복수국 간 공조가 필요한 이유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시급한 것은 대응 방안이 아니라 TPP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다. 협정문이 공개되면 한·미 FTA와 얼마나 다른지, 근본적으로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경제영토’ 확장에 그칠 게 아니라 TPP가 국내 부가가치와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될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중소기업의 수출활로 개척,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 안정, 대기업의 독과점구조 해소 가능성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국내 언론이여, 제발 침착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