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호/자유기고가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흘렀다. 삼국통일 이후 1300여년간 한 나라 한 민족으로 살아온 한겨레가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갈려 길고 긴 단절의 세월을 살고 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서로 오가지 못하고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 주고받지 못한 채 살아온 남북 이산가족들의 고초야 어찌 이루 말로 다할 수 있으랴. 이미 많은 이산가족들이 한을 품은 채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는가.

오랜 세월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단절된 삶을 살다 보니 남한사람과 북한사람은 이제 같은 민족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가 많이 달라지게 됐다. 소득수준은 물론 옷차림과 사고방식 말투와 언어 등 모든 것이 달라졌으며 심지어는 체격과 신장까지 남북간에 큰 차이가 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남북간 언어의 이질화는 그 정도가 심각해서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남한사람이 북한사람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통역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실제로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겪는 여러 가지 문화적인 충격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남한사람들이 쓰는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일하는 한 탈북여성은 손님이 '티슈'를 갖다 달라고 하자 티슈가 무슨 음식인지 몰라 쩔쩔맸다고 한다. 또 어느 손님이 남한생활이 힘들지 않느냐 물었을 때 '일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그 손님이 기분 나빠 하더라면서 북한에서 '괜찮다 좋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인데 남한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알아들어 놀랐다고 한다.

'하이루. 자기야 방가방가. 나 그 뮤지컬에 필이 꽂혔는데 우리 오늘 번개팅 하지 않을래? 내가 쏠게.' '자기야 아메리카노 할래 에스프레소 할래?' 요즈음 남한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이런 말들을 북한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1966년 김일성 주석은 외래어와 한자어를 쓰지 말고 순수한 우리말을 사용하라는 '문화어' 교시를 내렸다. 이때부터 북한에서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외래어들까지 모두 우리말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북한사람들이 '코너킥'을 '모서리차기'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밖에 '스킨로션'은 '살결물' 햄버거는 '고기겹빵' 도넛은 '가락지빵' 브래지어는 '가슴띠' 각선미는 '다리매' 미소는 '볼웃음'이라고 한다.

살결물이나 볼웃음 다리매는 아름다운 우리말 같이 들린다. 그러나 지나치게 우리말을 고집하다 보니 때로는 어색하고 이상해지는 경우도 있다. 북한에서는 전등을 '불알'이라 한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리고 사실인지 우스갯소리인지는 모르지만 골프를 '십팔 구멍에 공 알 쳐 넣기'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남북한간 언어의 이질화가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근래 들어 북한을 휩쓸고 있는 한류 열풍이다. 남한에서 방송된 인기 TV 드라마는 다음날이면 장마당을 통해 북한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당 간부에서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남한의 방송물을 시청하고 있으며 남한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머지않아 다가올 통일의 그날. 남과 북의 동포들은 얼싸안고 춤을 추며 무슨 대화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