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 / 세종대 교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난 14일 전후 70주년 담화(談話)는 예상대로 ‘사죄’라는 말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주어가 빠지는 등 한국으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내용이었다. 담화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이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 왔고,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식민지 지배’라는 단어가 빠졌다. 즉, ‘전쟁’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계승하겠지만,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읽을 수 있다. 다른 부분에 ‘식민지 지배’라는 말이 나오긴 하지만 담화의 기저에는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역사관이 깔려 있다. 러일전쟁이 한국 침략의 시작이었음에도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구절이 들어간 점도 이번 담화가 일본의 한국 침략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번 종전 70주년 담화 작성에 대한 제언을 하여 아베 총리에게 보고서를 올린 자문기관 ‘21세기구상 간담회’의 자문위원 16명 가운데는 미국, 중국, 중동 등의 전문가는 있지만 한국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다. 결과적으로 ‘간담회 보고서’는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행동은 침략으로 간주했지만, 1918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 원칙 이전 일본의 대외 행동에 대해서는 불법이 아니었다고 봤다. 주요 서양국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1918년 이후의 식민지 침탈(侵奪)은 불법이라는 논리로도 연결된다. ‘간담회 보고서’도 1931년 이후 ‘식민지 지배가 가혹해졌다’고 보고했고, 담화 속에서도 ‘전쟁터의 뒤안에는 명예와 존엄이 크게 손상된 여성들이 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아가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가늠할 수 없는 손해와 고통을 우리나라(일본)가 안겨 준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앞으로 일본의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아베 총리가 담화에서 ‘한국’ 등 여러 나라를 거론하면서 ‘전후 일관되게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해 왔’다고 하여 피해를 준 많은 나라에 대해 원조해 왔음을 강조했다. 이것은 청구권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가장 문제로 보이는 대목은 ‘그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우리(일본의) 아이들과 손자, 그리고 그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독일은 나치에 의한 희생자들에게 보상의 책임을 지금도 다하면서 매년 진심어린 ‘사죄’를 계속하고 있는 데 비해 진정성이 없는 일본의 입장은 이와 같은 표현으로 드러났다.

이번 담화에 대해 세계 언론들의 논조는 다양하다. 워싱턴포스트는 아베 총리가 ‘전임자들이 해 온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사죄를 반복하기를 피했다’고 비판적으로 보도했고, 타임스는 ‘부끄러울 정도로 일본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일본은 ‘전쟁의 가해자라기보다 피해자였다는 신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여 그런 신화의 극복을 촉구했다.

그런데 담화 후반부에서 아베 총리가 다시 여성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런 여성들의 마음에 늘 다가가는 나라가 되려고’ 한다고 언급한 부분은 군대위안부 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다고도 해석된다. 한국 정부는 이번 아베 담화를 좀더 면밀히 분석해 앞으로의 한·일 관계에 도움이 되도록 대응해야 할 것이다.